발표된 詩

|詩| 성북동 가는 길

서 량 2007. 8. 30. 20:38

30년 전쯤
어느 소나기 멎은 7월 일요일 오후에
돈암동을 바라본 자세로
삼선교에서 왼쪽으로 몸을 돌려
내가 한참을 혼자 걸었던 이유는
눈매 깔끔한 내 애인이
푸른 하늘 성북동에 살았기 때문이다
엉덩이 중간에 굵직한 지퍼가 수직으로 달린
진한 벽돌색 미니 스커트에
양키부대 미제장사 아줌마에게서 산
다이알 비누로 금방 목욕을 하고 나온
눈매 깔끔한 성북동 내 애인 머리냄새를 풍기며
브롱스 파크웨이에 소나기가 내린다
내 뿌리를 훑어 씻어 내리는 소나기
빗물이 눈물처럼 쏟아지는 브롱스 파크웨이에서
나는 급하게 왼쪽으로 차를 꺾는다
긴 골목길을 돌아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누르면
눈매 깔끔한 내 애인이 쏜살같이 뛰어 나오는
푸른 하늘 성북동 쪽으로


© 서 량  2002.6.15

-- <시문학> 2003년 4월호에 게재

   

시문학 5월호에 게재된 『이달(4월)의 문제작 시』에서
서량의 『성북동 가는 길』에 대한 심상운의 평

 

서량 시인의『성북동 가는 길』은 재미있게 읽히면서 향기로운 비누 냄새 같은 유쾌한 기분을 준다. 그 이유는 어떤 관념의 추상이나 추상적인 서술과는 거리가 먼 구체적인 사건이 멋진 이미지가 되어 비가 갠 날 하늘에 펼쳐진 무지개처럼 선명하고 아름답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싱싱히 살아 움직이는 언어가 만들어 주는 깔끔한 감각(感覺) 때문이다. 이 시에는 “눈매 깔끔한 내 애인”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푸른 하늘 성북동 쪽으로”라는 생명감과 삶의 기쁨으로 가득한 시인의 의식을 보여 주고 있는데, 어떤 관념어보다 더 절절한 느낌으로 살아 있다.

 -- <시문학 2003년 5월호, 187 –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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