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4

내 사랑 게르니카 / 김종란

내 사랑 게르니카 김종란 흰 눈 내리는 날 옥외 온천에서 뜨거움과 차가운 것을 받아들이며 거울안에 들어있는 다정한 사람들과 흰 눈처럼 내 살결에 닿아 스러지는 말 품고 흰 눈처럼 내려 쌓이는 거침없이 정다운 발소리와 목소리들 맑은 거울 속에서 목욕탕으로 꺾어지는 동네 골목길처럼 비스듬히 걸어 나와 선뜻한 바람에 목덜미 움츠리며 그 푸르른 게르니카 속을 한껏 움츠리며 통과한다 물에 퉁퉁 불린 붉은 발로 목욕탕 수증기에 휩싸인 젖은 머리로 나는 나름 푸르다 © 김종란 2012.10.12

흰 눈 벚나무 / 김종란

흰 눈 벚나무 김종란 벚꽃 어리는 눈 핏발이 서린 겨울이네 흰 눈 벚나무 수정 빛 여행가방 손잡이 알맞게 누그러졌으니 가볍든지 무겁든지 무릎 꿇고 양말을 개며 바지 탁탁 털어 접으며 오늘의 수업 마치고 목숨의 한 부분 말끔히 지운다 살아있어, 그 신비로움으로 뭉싯거리는 몸짓으로 문을 열고 낮고 짙은 회색 구름속에서 이무로이 찰라의 것들 낌새를 훔쳐내지 눈을 찌그려라도 뜨고 응시하면 물꼬가 터져 흰 눈 벚꽃이 진다 검붉은 열매가 드러난다 살아있어 봄 겨울에 흰 눈 벚나무 © 김종란 2011.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