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 4

7월 / 김정기

7월 김정기 풀꽃들은 지금도 젊게 핀다 해는 더 이상 늘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夏至의 뜨거움은 있었지 몸에서 불붙던 긴 낮은 꼬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밤이 조금씩 잡아당겨 덧난 빛깔들 고였는가 집집마다 작은 풀꽃 피어 잦아드는 빛을 밝히고 있다 7월을 건너가지 못하고 떠난 사람의 황홀이었나 하늘에 흐르는 강물 속 찍힌 발자국을 더듬는다 힘센 시간은 비켜가고 다시 산나리도 피어난다 꽃의 뼈가 굳어지면서 꽃 살에 물집이 생겨도 당신은 오늘을 화창하게 한다. 한낮의 적막이 젖어와 정갈한 단어만 물려주려고 땅에서 돋은 별을 주어 들고 계절의 가운데 몰려 있다 얼마큼 와 있는지 가늠 못해도 그 강에 가까이 서있다 한 다발 눈물도 흘려 보내면 그만인 발길도 뜸하다 가벼운 풍경을 몸속에 새기며 앳된 꽃잎 품에 품고..

그림도시 / 김정기

그림도시 김정기 샛길로 들어섰다 지도에도 없는 도시를 택하기까지 풀포기도 마르고 회색만 무성한 세계 제일의 거리를 떠나기로 했다, 함께 가던 사람이 갈래길에서 서로 갈라지기도 했다. 여기는 마음대로 색을 낼 수 있는 물감으로 가득 채워져 언제나 황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빛깔 친구들은 서로 어우러져 신비한 궁전을 세우고 우리는 시인나라를 만들고 있다. 여기는 왕도 없고 신하도 없이 모두가 최고 권력자로 번쩍이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다. 바람의 살을 만지는 동행은 맑은 물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 김정기 2010.02.18

11월에게 / 김정기

11월에게 김정기 나뭇잎에 가려 들리지 않던 먼 기적 소리 기침에 묻어 토해내는 맑은 울음 그대에게 가네 닿기만 하면 물이 되어 썩는 육신 씻어 첫 새벽 흔적 없이 잎 떨군 나무 가지에 올려놓는 바다 돌아오지 못할 항해에 배를 돌리는 11월 고요한 것이 꿈틀대며 세상을 덮는 황홀을 오후 네 시의 어두움을 만지며 朱黃볕 한 가닥 눈에 넣어 갈대 한 잎에 고인 이슬 되네 © 김정기 2009.11.07

|詩| 대담한 발상

영화에서는 남자들이 얼토당토아니하게 공격적이잖아요 그래서 재미있잖아요 답답하고 후줄근한 역경이 다 지나가고 평온한 시간이 한참 흐른 다음에야 당신은 죽음이 두려워서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남자들에게 질깃한 연정을 느꼈잖아요 종려나무 잎새를 포근히 감싸주는 하늘을 올려보는 순간이 딱 그랬어요 코리언 에어라인 창문 밖 구름 밑에 깔린 발 아래 뉴욕의 야경이 또 그랬고요 그건 손을 내쳐 뻗쳐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당신이 허기진 시선을 보내면 응당 들이닥치는 아찔한 현기증이었어요 더 이상 참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어 혹한의 추위가 내 거실을 뻔뻔스레 침범한 토요일이었나 싶은데 혹시 당신이 손에 땀을 쥐고 관람한 전쟁영화였는지 온통 땀으로 번질번질한 얼굴의 남자들이 막무가내로 뛰어다니는 전쟁터에서 터지는 일 같은 ..

2021.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