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7

|詩| 괘종시계 호랑이 얼굴이

사람 키보다 큰 괘종시계가 벽에 등을 대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종아리에 쥐가 나네 내분비학을 전공한 대학 후배 얼굴이 떠올랐어 근육이 뻣뻣해 밑도 끝도 없이 터지는 일,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 마음이에요 흐리멍덩한 메모리, *Tyger Tyger, 호랑이가 내 쪽으로 쓱 한 발 다가온다 줄무늬 줄줄이 물결치는 色相, 호랑이 몸이 일그러진다 무너지는 겨울 파도, 호랑이 얼굴이 괭괭 울린다 당신이 망가지고 있어 내 얼굴이 괭괭 울린다 두 발로 서면 몸집이 사람 키보다 큰 호랑이가 푹푹 깊은 숨을 몰아쉬는데 나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신비주의자, 선지자로 불리는 영국 시인 William Blake (1757~1827)의 대표작 “The Tyger”의 첫 구절. 시작 노트: 올해가 호랑이 해라는 걸 생각할 틈이..

2022.01.02

|컬럼| 73.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우리 전래동화에서 사람과 호랑이가 대적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 본 적이 있는가. '팥죽할머니'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구질구질하면서도 정감이 듬뿍 가는 사연들을. 팥죽할머니는 닭이며 송아지를 잡아먹는 호랑이를 팥죽을 주겠다며 어느 날 저녁 집으로 초대한다. 할머니는 호랑이에게 불 꺼진 화로를 후후 불라 해서 눈에 재가 들어가게, 고춧가루를 탄 물로 눈을 씻게, 그리고 바늘을 촘촘히 박아 놓은 행주로 따가운 눈물을 닦게 한다. 호랑이는 마당으로 뛰어나가다 개똥에 미끄러지고, 멍석 도깨비에 둘둘 말리고, 지게 도깨비에 얹혀 운반되어 강물에 첨벙 던져진다. 당신은 또 떡바구니를 들고 산언덕을 넘을 때마다 번번히 호랑이를 만나는 떡할머니를 기억하는가.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

|컬럼| 28. 악마와 호랑이

‘Speak of the devil and he is sure to come’이라는 영어속담이 있다. 이것을 ‘악마에 대하여 말하면 악마가 꼭 온다'는 식으로 직역한다면 당신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하는 순간 그 뜻이 귀에 금방 쏙 들어오지 않는가. 인간의 잠재의식에 깊이 박혀 있는 두려움의 대상이 동서양 간에 이렇게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옛날 양키들은 악마를 무서워했고 우리 선조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에서처럼 우리의 호랑이는 위기를 지칭한다. 반면에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서)’ 하면 진퇴유곡에 빠졌다는 뜻..

|컬럼| 183. 고양이와 개와 쥐

It rained cats and dogs last night! 정말 그랬다. 요란하게 싸우는 고양이와 개처럼 지난 밤에 비가 억수로 내렸다. 승용차 여섯 대가 이리저리 부딪혀서 사고가 난 고가도로를 차들이 엉금엉금 기었다. 더러는 샛길을 이용하러 했지만 교통이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출근이 이렇게 늦어진다는 건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다. 곤경에 빠졌다는 뜻으로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가 있다. 사람이 '악마와 짙은 청색의 바다'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섬뜩한 표현이다. 이런 걸 한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 하지만 나는 귀에 얼른 쏙 들어오는 '빼도 박도 못한다'는 순수한 우리말이 더 좋다. 그리고 그럴 때는 그냥 '쥐 죽은 듯' 가만이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