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6

|담론| 나무와 성격에 대하여

“성격은 나무와 같고 평판은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는 우리들의 생각이지만, 나무는 현존하는 실체다. -- 아브라함 링컨 우리는 나무의 진정한 특성을 실제로 파악하지 못한다. 나무 그림자를 통해서만 나무를 인지할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맥베스’의 등장인물을 통하여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불쌍한 연극 놀이…"라고 이 생각을 넌지시 말했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사람의 성격을 햇빛이 있거나 조명의 각도에 따라 투사된 그림자를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뿐.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듯이, 사람의 성격도 드러나지 않으면 알아내지 못한다. 나를 에워싼 빛이 빚어내는 다양한 형상의 내 그림자를 거듭해서 본다. ‘남들’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근본적인 빛의 원천이다. 그들이 나의 조명 환경이다. '인간 환경'! ..

티테이블에는 어제의 햇빛이 아직 남아있다 / 김종란

티테이블에는 어제의 햇빛이 아직 남아있다 김종란 티테이블에는 어제의 햇빛이 아직 남아있다 아무도 오지 않아도 약간 빼어 놓은 의자엔 온기가 서려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어서 모서리들이 둥글게 부드러워 보인다 분명 꽃은 없는데 꽃들이 꽃병 안에서 미소 짓는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어제의 그제의 그그제의 햇살이 쌓인다 누가 그곳에 가지 않아도 티테이블은 만나고 있다 사람 산토끼 거북이 종달새 모습들이 불현듯 테이블 언저리를 잡고 웃고있다 티테이블은 몽상의 바다에 자리 잡고있다 내가 온곳에서 몰래 따라온 푸름이 깊어질 수록 더 반듯하게 몸을 펴고 앉아있다 눈을 감으면 티스푼이 찻잔에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시간의 껍질이 벗겨지는 작은 마주침들 족쇄가 차인 발목은 점점 깊은 바다에 가라앉고 열 발걸음쯤 떨어진 ..

겨울 도시 / 김정기

겨울 도시 김정기 혼자 썩어가는 영하의 노을 회색 장막을 치고 문을 닫는다 두 줄기 양란을 배달하는 아이의 발걸음에서 빠르게 와버린 겨울의 속살이 보인다. 공원의 나무들 눈물겨운 숨소리 땅에 묻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안개로 서려온다, 뼈아픈 것끼리 이루는 화음이 헐거워진다. 겨울 박물관에서는 엉겅퀴 꽃 한 송이에 모든 햇빛을 쏟아 붇는다. 낯익은 한글 간판이 목청껏 소리 지르는 한인 타운에서도 동행이 없이 스스로 작아지는 어둠이었다. 30번을 맞는 겨울이건만 타관은 타관이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찬바람이 와서 손을 잡는다. 그래도 붙잡혔던 우리 집 단풍나무 잎새 몇 잎이 짧은 겨울 해 어깨위로 조용히 몸을 눕힌다.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식이다. 그러나 도시는 더욱더 현란해진 불빛에 취하여 비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