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4

|컬럼| 445. 인사이드 잡, Inside Job

병동에 환청 증세가 있는 환자들이 많다. 그들은 대체로 환청에 대하여 내게 소상하게 말하지 않는다. 50대 중반의 필립이 다른 병동에서 내 병동으로 꽤 오래 전에 후송돼 온 이유는 그곳 정신과의사에게, “Stay away from me! 가까이 오지 마!” 하며 복도에서 음산하게 말하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속 마음을 남에게 쉽사리 털어 놓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 얘기를 하자 하면 낮은 목소리로 거부한다. 필립이 외로운 자세로 병동을 걸어간다. 뒷짐을 지는가 하면 양손을 위로 올리며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무슨 시그널을 보내는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다른 환자들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그를 회피하려는 눈치다. 그가 내 오피스 앞을 지나가며, “You don’t understand, ..

|컬럼| 333. 왜 난동이 일어날까

내가 일하는 정신병원은 병원 전체가 폐쇄병동이다.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여러 군데 전전하다가 후송돼 오는 곳이기 때문에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어렵고 오래 걸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확성기를 통하여 ‘코드 그린’이 전 병원에 울려 퍼진다. 직원들이 비상사태가 터진 병동으로 뛰어간다. 한 환자가 난동을 피운 결과가 코드 그린의 원인이 된다. 그린, 초록은 성장의 상징이니까 환자들이 정신적 성장을 위하여 난동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나는 자주한다. 어릴 적 길거리에서 내 또래 코흘리개 어린애들이 치고 박는 싸움이 나면 동네 어른들이 “싸워야 키 큰다”며 소리치며 애들 몸싸움을 선동하던 기억이 난다. ‘agitation, 난동’에 대하여 환자들과 토론했다. 난동을 피우는 환자는 병동직원이나 다른 환자..

|컬럼| 323. 세 개의 벽

환청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묻는다. 정체를 모르는 목소리,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럿이 토론을 하다가 의견충돌을 일으키는 목소리들, 더구나 남을 해코지 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그들의 압력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묻는다. 환자가 대답한다. 목소리에게 대들기도 하지만 대개는 못들은 척 한다는 것! 심지어 목소리가 시키는 일이 있으면 그러겠다 해 놓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는 것! 이 환자는 목소리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내부 상황과 벽을 쌓고 지낸다. 그 벽은 혼동과 선동을 불러 일으키는 악의에 찬 자극을 차단한다. 한 국가로 치면, 이것은 외적의 침입이 아니라 질이 나쁜 내부 세력이 난동을 일으키는 정황이다. 이 사악한 내부 자극이 끝내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숙이게 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