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2

실 / 김정기

실 김정기 어머니는 실을 감으신다. 실타래에 두 손을 넣고 양팔을 벌리면 매듭 지은 것 훨훨 풀어가며 손을 돌려가며 완자 무늬 동백나무 실패엔 물레에서 뽀얗게 뽑아진 무명실이 소복소복 감긴다. 봉숭아 꽃물들인 손톱에 반달이 떠오를 때 평생을 다해 한길 걷던 어머니는 실 감기를 멈추시고 길 떠나셨는데 꿈속에선 아직도 대청마루 돗자리 위 모시치마 입으시고 내 손 실타래에서 조선의 곧은 실을 올올이 감아 반도강산 충청북도에서 태평양 물결 건너 뉴욕까지 유전자에서, 노래 가락으로 풀려 나오는 길기도 하여라. 어머니의 실꾸리. © 김정기 2011.08.22

|詩| 여권만기일

살 떨리는 각성이었다 한여름 케네디 공항에서 자정쯤 내 여행의 자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료됐다는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을 때 불면의 밤을 절단하는 탐조등뿐만 아니라 허기진 밤참이 누워있는 식탁에서 생선구이 같은 고소한 비린내가 뭉실뭉실 났습니다 같은 시각에 짙은 안개가 서재 밖 키 큰 나무들 옆을 서성이고 있었지요 칙칙한 지느러미를 휘적거리며 그들이 떼를 지어 내 허랑한 상상력의 변두리를 슬금슬금 헤엄치는 밤이었습니다 이틀쯤 지난 대낮 태평양 뜨거운 하늘에서 발 밑으로 둥둥 떠도는 수제비 구름 덩어리들을 젖은 눈길로 검색했다 그러는 나를 누군가 비정하게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 서 량 2012.09.14

201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