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3

|컬럼| 370. 빎

1980년대 말경 아메리카 온라인(AOL)에서 나는 인터넷 시(詩) 동호회의 열성 멤버였다. 켄터키 주 어느 멋진 여류시인과 문자를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남편이 방광암 진단을 받았는데 치유가 되도록 기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다. 차마 무신론자라는 말을 못하고 그러마 했다. 나는 기도를 전혀 하지 않았고 몇 달 후 그녀 남편은 사망했고 그녀는 내게서 흐지부지 사라졌다. 수년 후 다시 인터넷에서 그녀와 마주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만 대화가 전 같지 않았다. 그녀 남편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솔직히 나는 평생 기도를 해 본적이 없다. 가끔 남이 하는 기도에 실눈을 뜬 채 잠시 딴 생각을 하는 비기독교인이다. 정신과 월간지에 실린 “종교와 영성(靈性, sp..

|컬럼| 361. 말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

-- To live is to suffer. To survive is to find some meaning in the suffering. (Nietzsche) -- 삶은 시달림이다. 살아남는 다는 것은 그 시달림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 (니체) 제임스가 죽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망원인이었다. 몸이 뚱뚱하고 지능이 남들보다 많이 낮은 반면에 성격이 참 원만했던 제임스가 엊그제 죽었다. 내가 묻는 말은 전혀 대답하지 않고 딴소리를 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아무 결론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해도 늘 좋은 기분을 남겨주는 병동환자였다. 내과의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저도 제임스를 좋아했다고 말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나는 코로나 환자와 가족과 응급실 의사들의 미치광스러운 나날에 대하여 잠시 생각한다. 지구..

|컬럼| 360. 워리

2020년 4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뉴욕 의료인들이 고초를 겪고 있다. 약사, 슈퍼마켓 종업원, 배달업자, 의사같은 직업은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직종이다. 차가 몇 대 안 보이는 유령 도시의 고속도로를 나 또한 매일 질주한다. 병동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환자들의 민낯이 편안해 보인다. 한 직원이 부럽다는 듯이 투덜댄다. “They are not anxious at all” - 저들은 도무지 걱정을 하지 않네요. ‘anxiety(걱정, 두려움)’, ‘anguish(고민)’, ‘anger(분노)’처럼 ‘앵~’으로 시작되는 말은 전인도유럽어에서 좁고, 답답하고, 옥죄인다는 뜻이었다. 노여워서 토라진다는 뜻의 ‘앵돌아지다’라는 우리말도 ‘앵’자 돌림이라고 당신이 주장한다면 그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