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5

|컬럼| 295. 말없음에 대한 정신분석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에 대하여 생각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한 사람과 정신과의사라는 다른 한 사람 사이에 의사전달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대화를 나눌 때 환자건 의사건 서로 언급을 하는 사항보다 언급을 하지 않는 사항이 더 많다는 사실도 이상하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소통과 불통에 적용된다. 사실 우리는 말하기(有言)보다 말없기(無言) 쪽으로 더 관심을 쏟아야 할 때가 많다. 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카테고리로 침묵의 의미를 분류한다. 1. 마음이 편해서 말이 없기흔쾌한 휴식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에너지의 재충전. 음악회 중반부에 삽입된 인터미션의 효능이랄 수도 있겠다. 감칠맛 나는 섹스를 끝낸 원기 왕성한 남녀가 서로에게서 잠시 떨어져 제각각 말없..

흙 갈이 / 김정기

흙 갈이 김정기 꽃나무도 나이 들면서 헛소리를 한다. 십 수 년 묵은 집을 털고 새 흙에 심겨지니 이웃에 낯가림을 하면서 떠난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 밤새도록 흩어진 친구를 부르다 끝내 실어증을 앓는다. 연한 뿌리들이 감추어둔 얼룩을 찾아 꿈틀대다 꺾이고 상하고 오래된 것들이 살갑지만 낯선 것은 서툴고 불편하다 그래도 새것은 눈부시다. 어두움에 길든 침묵은 햇볕에게 말을 건다. 질긴 끈으로 묶였던 시간들이 토막 나 뿔뿔이 달아나고 뒤섞여도 당신은 거기에 있었구나 창공에서 쏟아진 이름들이 숨긴 어제와 손잡아도 끌어안아도 흩어져버리는 이 땅 한 번쯤 뒤돌아본 당신의 흙 묻은 얼굴 그러나 계속 당신을 향해서만 고개 돌리는 타향 떠밀려온 흙은 그나마 화분에도 못 담기고 버려져 엉겅퀴를 키우지만. 장미꽃과 잡초가 ..

|詩| 치고 들어오다

치고 들어오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라 -- 비트겐슈타인 1월을 맞이하라 시간이 두 조각으로 갈라진다 헐벗은 떡갈나무 가지 쪽으로 당신이 눈길을 옮기는 사이에 지금 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아요 걸핏하면 발끈하기 갈등관계 지탱하기 일부러 밀어붙이기 서로를 감염시키기 1월을 공격하라 맞받아 치는 사이에 아픔은 사라진다 당신의 슬픔이 침묵 속에 가라앉는다 시간이 떡갈나무를 냅다 흔드는 동안 © 서 량 2021.01.15

2021.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