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3

가장 무거운 것 / 김종란

가장 무거운 것 김종란 지하 이층 숨긴 둥지에서 깨어난 새끼 비둘기들 천진난만한 울음소리는 아침잠 묻은 채 오르내리던 지하 삼층 에스컬레이터 잠시 멈춘다 빛과 속도를 비행하며 내려와 지친 비둘기 한 마리 지하에 두고 간 노래소리 물밀듯 승객 빠져나간 지하철 통로에 남아 빨간 잠바에 흰 모자 깔끔하게 쓴 중국여인 광활한 우주에 무중력으로 뜬 채로 아직도 쉬지 않고 혼자 대화하고 있다 운행을 멈춘 별똥별처럼 명멸한다 잉크냄새 풍기며 하루는 발행되었으니 생명의 뒷문 열어 젖혀 맞바람 치는 한 켠 그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낡은 이야기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일어나 빠르게 걷는다 무거워진다 폐기되는 길 위에 지어지는 집 숭숭 뚫린 꿈과 기억을 눈물로 메운 집 가볍고 아슬아슬한 집들의 골목을 되짚어 가는 길은 ..

입춘의 말 / 김정기

입춘의 말 김정기 땅속에서 벚꽃이 피어 속삭이고 있다. 진달래의 비릿한 냄새 스며들어 신부를 맞으려고 흙들은 잔치를 벌이고 있다. 작년에 떨어진 봉숭아 씨앗이 겨드랑이로 파고들어 연노랑 웃음을 감추고 있다. 몸 안에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수 천 년 가두어 둔 바람이 새 옷을 준비하고 덜 깬 잠에서 흐느끼고 있는 벌레가 나비의 발음으로 말을 걸어온다. 꿀벌의 몸짓으로 노래 부른다. 지하에 준비된 봄의 언어를 목청껏 뱉어보는 새벽 품에서 자란 새들이 날개를 달고 돌아 올 수 없는 시간을 물고 반드시 약속은 지키겠노라는 입춘의 말을 듣고 있다. © 김정기 2010.01.26

|詩| 동굴 입구

퀴퀴한 동굴 속 낯익은 얼굴들 동물가죽으로 알몸을 덮는 둥 마는 둥 목이며 발목을 쇠사슬에 묶여 어깨만 흔들거리는 몸 그들 등때기 뒤쪽 어머나, 샹들리에 모양 횃불이 타오르는 *동굴 벽 그림자, 사나운 숨소리 굉음으로 울리는 동영상이 엄청 재미있어요 누군지 무엇인가에 질질 끌려 나가 관람하는 동굴 밖 세상 배신자의 무거운 발길이 다시 동굴 쪽을 향한다 땅속 깊이 위치한 동굴 입구 이 텁텁한 우주를 지하, 지상, 천상으로 3등분한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도무지 어떤 놈들이냐? * 플라톤의 공화국 제 7권에서 시작 노트: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고등학교 때 귓등으로만 듣던 플라톤의 동굴 벽 그림자를 다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그 스토리텔링은 이상한 공포심을 자극했다. 아직도 나는 젠체하는 플라톤이 무진장 ..

202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