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 4

흰 눈 벚나무 / 김종란

흰 눈 벚나무 김종란 벚꽃 어리는 눈 핏발이 서린 겨울이네 흰 눈 벚나무 수정 빛 여행가방 손잡이 알맞게 누그러졌으니 가볍든지 무겁든지 무릎 꿇고 양말을 개며 바지 탁탁 털어 접으며 오늘의 수업 마치고 목숨의 한 부분 말끔히 지운다 살아있어, 그 신비로움으로 뭉싯거리는 몸짓으로 문을 열고 낮고 짙은 회색 구름속에서 이무로이 찰라의 것들 낌새를 훔쳐내지 눈을 찌그려라도 뜨고 응시하면 물꼬가 터져 흰 눈 벚꽃이 진다 검붉은 열매가 드러난다 살아있어 봄 겨울에 흰 눈 벚나무 © 김종란 2011.02.06

|컬럼| 315. 보여주고 싶은 욕망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1901~1981)이 설파한 “응시(gaze) 이론”의 핵심은 이렇다. --- 생후 한두 살짜리 아기가 물끄러미 거울을 응시한다. 그는 호기심에 매료되어 애를 태우다가 거울 속 영상이 저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인지한다. 아기는 나중에 거울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감지하면서 그 사람의 눈에 비춰진 자기 모습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좋은 버릇을 키운다. 아기가 기어가는 동안 의자에 부딪치지 않는 것도 당신이 전봇대와 충돌하지 않고 차를 운전하는 것도 다 이 “응시” 덕분이다. 라캉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강력한 힘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상대를 응시할 때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같은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그의 ..

|詩| 맨해튼 북부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맨해튼 북부 웨스트 사이드 너절한 거리를 걸어간다고 쳐 꽃집도 몇 군데 있는 개는 개대로 바보처럼 기뻐하고 개 주인은 인생을 정중하게 탐색하는 태도를 포기한지 한참 됐다거나 아니면 찌릿한 마음의 평온 같은 거나 죽음에 접근하는 서늘한 평화를 좋아하는 법을 목하 체득 중이라고 쳐 개 주인이 아니야 꼭 그런 상황이 아니면 어때요 설정이야 아무렴 어때요 우리 처음부터 다시 해요 응 그래 한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맨해튼 북부 웨스트 사이드 한여름에도 늦가을인 듯 바람이 부는 거리를 개 다리 넷과 사람 다리 둘 도합 다리 여섯 개가 바쁘게 튼튼한 드럼 비트에 박자 맞춰서 쿵처적! 쿵척! 신나게 빠르게 걸어간다고 쳐 수정벽으로 쫘악 둘러 싸인 용궁 속에 앉아 적적한 바다 밑을..

2020.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