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따스함 나를 유혹하는 것은 너의 생김새가 아니다 네가 일부러 만들어내서 내 영혼에 이음새 없이 스며드는 색깔들이다 낮게 울리는 클라리넷 소리처럼 쉴 곳을 찾아드는 너는 한 뭉치의 빛이다 시작 노트: 단순한 발언이 심금을 울릴 수 있다 한다. 느낌을 피력하는 시간의 길고 짧음에 나는 익숙하지 못해요. 너무 짧으면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걸 염두에 두기 때문인지. © 서 량 2023.03.15 마티스를 위한 詩 2023.03.15
|詩| 달콤한 꿈 꿈에도 법칙이 있대 꿈을 지 마음대로 꿀 수 있다며 나를 달콤하게 유혹하는 책을 읽었어 우리는 모두 한결같은 드림프로듀서 당신도 나도 밤이면 밤마다 지 구미에 맞게 꿈을 꾸민다는 거지 배경음악이 꺼림직하다 중간중간에 들린다 캄캄한 창세기 이후 내내 혼자 중얼거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 세상에나, 지 뜻대로 꾸민 천연색 꿈을 관람할 수 있다니요 푹신푹신한 소파에 거의 누운 자세로 앉아서 지루한 설명 부분일랑 건성건성 넘어가고 달콤한 장면만 골라서 즐기면 되겠네, 안 그래요? © 서 량 2009.11.11 – 2021.04.06 詩 2021.04.06
|詩| 봄이 나를 버리고 매년 봄이면 손짓하고 꼬리치고 싱그러운 들판을 함부로 뛰어다니며 봄을 유혹하다가 덜컥 변덕이 나서 내가 먼저 달콤한 작별을 고하기도 하는 줄로 예사로이 알았는데 // 매년 봄이면 나무들이 벌건 대낮에도 몸에 꼭 끼는 초록색 야회복을 입고 루비며 진주 목걸이를 달랑달랑 걸친 그 모습에 고만 질려서 내 뻥 뚫린 시야를 앞지르는 게 정말 미워서 눅진눅진한 앞마당 밖으로 내가 먼저 봄을 쫓아내는 줄로 참 예사로이 알았는데 // 이제 나 봄 정원 귀퉁이에 하나의 돌멩이가 되어 좀 긴장하며 눈 감은 채 가만가만 누워있고 봄이 지 마음대로 이상한 요술을 부리다가 불시에 나를 버리고 훌쩍 떠나겠다는 데야, 이제 나는 © 서 량 2006.05.25 [뉴욕 중앙일보 글마당] – 2020.02.16 개작 발표된 詩 2020.02.16
|詩| 대화 꽃은 깊은 밤에보다 아침에 감성이 풍부합니다 멋 적은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는 그런 시간에요 꽃의 소임은 날 유혹하려는 마음을 잘 감추는 일일 걸 꽃은 당신이 바짝 다가와도 꼼짝달싹하지 않는 화사한 아침 이슬 빛, 한참을 내버려두어도 고스란히 남아도는 그렇게 진한 감각이랍니다 © 서 량 2012.05.18 詩 2012.05.18
붉은 칸나* / 조성자 붉은 칸나* 조성자 땅으로의 긴 여행은 언제부터였는지 빙벽을 뚫고 백 년 만에 남하하고 있다는 폭설 공룡의 무리처럼 행군하고 있다는데 그래서 막을 자는 없다는데 저 돌진은 무슨 소명을 안고 있는 걸까 이마에 닿자마자 흘러내리는 눈 전언을 등에 메고 달려와 자국도 없이 사라지는데 나는 아직.. 김정기의 글동네/시 201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