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4

|詩| 외출

외출 -- 마티스 그림 “창문의 젊은 여자, 저녁노을”에게 (1921) 붉게 물든 바닷물 언저리, 언저리에 모르는 사람들이 멀고 멀어요 붉은 하늘 보라색 하늘을 만지는 여자 투명한 창문 붙박이 창문 너머 야자수 검푸른 야자수를 건드리는 손, 손가락 완전히 몸을 떠나서 詩作 노트: 실내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여자는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남을 보는 순간 남이 되는 나. 이 그림을 보면서 어느새 나 또한 손을 뻗쳐 야자수 잎새를 건드린다. © 서 량 2023.05.12

|詩| 내 그림자

어느 날 내 그림자가 휘청거리는 장면을 보았다 무형도 유형도 아니면서 연신 변덕을 부린다 누군가 저를 살펴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듯 태평한 동작! 내가 점잖아지면 저도 차분해지고 내가 까불면 금세 팔짝팔짝 뛰논다 그는 찬 바람 몰아치는 봄밤이면 내 등때기에 바싹 들러붙어 내 육신의 명맥을 잘 이어주는 본심을 알 수 없는 동물이었다 지금 잠시 어디로 외출하고 없는 내 그림자가 그립다 시작 노트: 16년 전에 멋모르고 쓴 시를 지금 새삼 살펴본다. 그때도 내 동물뇌와 인간뇌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잘난 척하면서 분별심을 발휘하는 나는 또 누구냐. 나도 내 그림자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을 뿐. - 2023.02.28 © 서 량 2007.07.26 -- 뉴욕..

발표된 詩 2023.03.01

연분홍 양산을 쓰고 / 김정기

연분홍 양산을 쓰고 김정기 웨스트체스터 하늘을 통째로 가리고 자외선이 분결같은 얼굴에 닿을 세라 몸에 남은 물이 다 태워질 세라 통증가득 실은 비행기가 처 들어 올 세라 폐허에서도 달콤한 감각을 가져 다 주는 연분홍 양산을 쓰고 외출을 했다 맑은 칠월 땡볕을 가리려 진분홍 반짝이마저 달려있는 날아갈 듯 고운 양산을 쓰면 머나먼 것들이 보이고 연약한 부분에 힘줄이 생기고 가마꾼이 없어도 가파른 산엔들 못 오르리. 연분홍 양산을 쓰고. 아! 그림자도 반짝이는 양산을 쓰고. © 김정기 2011.07.02

|詩| 자목련의 첫외출

바람의 습도를 감지하는 자목련, 어깨를 움츠린다 어두운 붉은색 꽃잎 짙푸른 초록빛 품에 휘말려요 바람결 연신 흔들리는 자목련 당신은 도시의 불온한 습기를 한껏 들이마실 것이다 간간 크게 놀라기도 하고 낯선 사람들 말투를 흉내 낼 것이다 자목련의 첫 번째 외출 어두운 붉은색 꽃잎 짙푸른 초록빛 품으로 산산이 흩어지네 시작 노트: 2021년 봄 즈음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보고 또 보는 차고 옆 굴뚝 앞 자목련이다. 키가 내 두배 정도. 자목련의 엉성한 가지는 있는둥 마는둥 자목련이 가지채 세차게 흔들린다. 꽃의 흔들림은 순전히 바람 때문이다. 모든 꽃들이 그러하듯 자목련은 바람에 합세한다. © 서 량 2021.05.07

2022.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