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4

|詩| 양옥집

양옥집 내 영혼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작품. 장마철이면 부엌 아궁이에 물이 고이는 하왕십리 미음字 한옥에서 길 건너 도선동 양옥집으로 이사를 간다. 바람이 自由自在로 들락거리는 2층 내 방 밖 옥상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발을 분다. 잠시 속세를 깔본다. 클라리넷  콘체르토 3악장 론도 알레그로. 모짜르트 작품 속에서 내 영혼이 마구자비로 활개친다. 나는 내 자신의 작품에 지나지 않는구나. 옆집 기와지붕 밑 여자가 제발 고만 불라며 날카롭게 소리치네. 詩作 노트:하왕십리 미음字 한옥에서는 앞마당 장독대에 올라가서 나발을 불다가 군화 한 짝이 집안으로 날아온 적이 있다. 맞을 뻔 했다. © 서 량 2024.04.06

불쏘시개 / 김정기

불쏘시개 김정기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헤매고 있으면서 구겨진 모국어를 껴안고 흐느끼면서 문우들에게는 불붙은 꽃이 되라고 높게 키운 불에 눈을 뜨라고 입 다문 그대의 입이 열린다면 몸으로 성냥을 긋고 나를 살라 불길을 만들 수 있다면 산이 부서져 피리가 되는 아궁이에서 젖은 그림자를 말리며 은하가 되리 물결이 되지 못한 물은 강 밑바닥에 가라앉아서도 노래 부르며 타올라 가리, 가랑잎 되어 꽃으로 밀봉하여도 불꽃이 되기 위해 헝클어진 말들을 함께 추려 빗기자고 활활 타는 뜨거움으로 시간을 새길 수 있고 세계 곳곳을 달굴 수 있고 이제 빛나는 별들이 되고 있는 그대들 위해 한줌 재로 조용히 삭으러지리 © 김정기 2017.09.02

고추냉이 / 김정기

고추냉이 김정기 아궁이 불을 끄고 들길로 나섰다 민들레는 피가 굳어 거친 숨을 내쉬고 강아지풀도 바람에 시달려 소리지른다 한풀 꺾인 가을 풀 섶에서 보랏빛 꽃 한 송이 엷어가는 햇살에 몸 적신다 매운 맛을 키우려 숨어있는 고추냉이 속으로 숨을 고르며 독을 키운다. 감추어둔 말을 쏟으며 날파리가 기어간다 기다리는 것도 지친 발걸음에 부서지는 가을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당신은 어디에도 없구나 버려진 풀끼리 쓰다듬는 틈새에 보이는 것이 있다 빛 알갱이들이 무리 지어 태어나는 고추냉이 속살. 다시 불을 지피고 매운 맛에 떤다. © 김정기 2010.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