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3

밤기차를 타고 / 김정기

밤기차를 타고 김정기 바람에 덜미 잡혀 밤기차를 타고 떠나는 늦여름 저녁 아홉시 반 그대 머리칼에 나부끼는 진고동색 윤기가 챙 넓은 모자 속에서 숨죽이고 있네 개칠한 무늬 같은 죽은 깨 몇 알 콧날 위에서 흘러내려오고 가두었던 시간 어두움과 버무려 포로롱 풀려나는 멧새가 되네. 차창에 내린 커튼 젖히고 적막과 만나는 그대 아메리카의 땅 냄새를 싣고 가는 밤기차를 타고. 때로 뱃속에서 꿈틀대는 화냥끼를 명품가게에서 산 옷 한 벌을 우리 집 정원에서 자란 청청한 소나무를 그 삭을 줄 모르는 끈끈한 송진 냄새를 부윰하게 떠오르는 山麓을 향해 던지며 던지면서 내던지면서 오늘도 밤기차를 타고. © 김정기 2009.08.30

조선고추 / 김정기

조선고추 김정기 삼십 년 넘게 태평양을 건너오던 물결 타고 조선고추 한 그루 파도 칠 때마다 휘청거리는 수족 허공에 심겨져 실뿌리 내렸네. 유리창너머 송화 가루 먹은 소나무 오리나무가 청청한 하늘을 찔러도 한반도에 이는 황사바람에 발 담그고 자라는 토종고추 그 매운 맛. 뉴욕의 바람과 한몸 되려 억울하고 독한 것 삼키고 삼킨 어질고 흰 고추 꽃이 지고 톡 쏘게 매운 고추 한 알 당신의 몸에서 담금질로 익어가는 가늘디가는 핏발 선명하네. 아니라고 손사래 쳐도 모종된 고추 한 그루에 매어달린 우리는 아리고 아린 조선 고추가족. © 김정기 201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