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 7

|詩| 어두운 조명

어두운 조명 -- 마티스의 그림 ‘무릎 위에 책을 얹은 여자’에게 (1936) 있잖아, 여름이라 해. 아니, 이른 봄도 괜찮아. 당신은 한 무리의 젠체하는 작가들이 쓴 시시한 산문집을 읽고 있다. 잠시 후 책 읽기를 멈추고 책의 세부사항을 차분하게 생각하는 장면이야. 정신이 멍해 지지, 그치? 당신은 깜빡 무뇌, 無腦 상태. 나는 당신의 무의식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화가다. 있잖아, 이거는 천상의 기류, 氣流가 부리는 화려한 변덕이야. 당신의 애니메이션은 완전 포즈 상태. 어린애가 그려 놓은 크레용 그림이지. 연하디 연한 버건디 적색이 스멀스멀, 펄떡펄떡 살아나는 장면을 상상해봐. 맞다맞다. 당신은 여자 무릎 위에 펼쳐서 엎어 놓은 한 권의 책이다. 재밌지? 시작 노트: 앙리 마티스의 그림 '무릎 위에 책..

|詩| 내 그림자

어느 날 내 그림자가 휘청거리는 장면을 보았다 무형도 유형도 아니면서 연신 변덕을 부린다 누군가 저를 살펴보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듯 태평한 동작! 내가 점잖아지면 저도 차분해지고 내가 까불면 금세 팔짝팔짝 뛰논다 그는 찬 바람 몰아치는 봄밤이면 내 등때기에 바싹 들러붙어 내 육신의 명맥을 잘 이어주는 본심을 알 수 없는 동물이었다 지금 잠시 어디로 외출하고 없는 내 그림자가 그립다 시작 노트: 16년 전에 멋모르고 쓴 시를 지금 새삼 살펴본다. 그때도 내 동물뇌와 인간뇌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잘난 척하면서 분별심을 발휘하는 나는 또 누구냐. 나도 내 그림자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을 뿐. - 2023.02.28 © 서 량 2007.07.26 -- 뉴욕..

발표된 詩 2023.03.01

|컬럼| 223. 변덕쟁이 두들겨 패기

사업이건 대인관계건 하다못해 남녀의 사랑에 있어서건 변덕은 바람직한 정신상태가 아니다. 변덕쟁이는 이 세상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다. 우리말로 '부린다' 하면 꾀를 부리고, 성질을 부리고, 신경질을 부릴 때처럼 꺼림직한 느낌이 보태지는 것이 흥미롭다. 자고로 군자는 몸종을 부릴지언정 변덕을 부리지 말아야 하느니라! 굳이 정신과 차원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인 견지에서 변덕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 기분이 변하는 것과 둘째로는 생각이 변하는 것. 기분과 생각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변덕이 심한 사람은 이 둘 중 어느 하나만 변한다기보다 둘 다 엉망진창이 된다. 변덕꾸러기들의 대다수는 성격장애자들이다. 변덕쟁이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그 결과로 그들은 분노에 휩쓸리기 십상이고 남을 ..

|詩| 가을 보내기

봄도 겨울도 다 괜찮지만 당신은 가을만은 믿지 마세요 골 깊은 땅이 썩을 듯 말듯 젖은 낙엽으로 덮이고 우중중한 산 그림자며 황급히 도망가는 철새며 조석으로 변덕을 일삼는 가을만은 믿지 마세요 둥근 땅과 하늘의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수록 당신의 뾰족한 영혼은 더 초롱초롱해 질 거에요 가을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가을은 단지 타고난 소임을 다 할 뿐 보아라 거칠고 조잡한 풀잎을 우적우적 뜯어 먹는 저 허기진 사슴의 무리를 쪽빛 하늘을 잡고 늘어지는 달 덩어리보다 더 고집이 센 천근만근 무거운 구름 떼의 행로를 믿을 수 없으리만치 엄청난 당신의 애착심을 © 서 량 2008.11.12

2008.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