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5

|詩| 검은 눈동자

검은 눈동자 --- 앙리 마티스의 그림, “바이올린과 함께한 여자”에게 (1923) 숭늉색 책상 바이올린 활이 나를 채찍질하네 심한 손가락 연습 손가락 연습의 휴식 점점 커지는 여자의 눈동자 숭늉색 발목 동공확대 동공확대 그림이 벽 위에 쌓이네 바이올린 몸체가 사라지고 우주가 전 우주가 고요해지는 오후에 시작 노트: 한 여인이 바이올린을 배와 무릎 사이에 옆으로 세워 얹어 놓고 바이올린 활을 손에 쥐고 있다. 음악 연습을 시작하려다가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기는지, 도중에 쉬는 중인지, 연습을 다 마쳤는지. 검은 눈동자에 동공확대가 일어난다. 마티스 그림 속 여자는 늘 모호한 분위기를 풍긴다. © 서 량 2023.0ㅈ5.05

슈만을 상상하다 / 김종란

슈만을 상상하다 김종란 텅 비인 마음이 있었다 바람도 머물지 않는 공간에 활을 그으며 운지하며, 눈짓과 화음으로 찰나를 달리는 손 등을 구부리고 주저앉은 후미진 곳 음악이 찾아와 흐른다 정신의 황홀과 불안 사이 징검다리를 걷던 그, 우리 곁으로 눈을 감고 슈만의 음악으로 들어가 이 불안과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 그에게 빛 속에서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슈만 그의 음악에 자맥질하다 취하여 날개를 단다 징검다리를 건넌다 어둠 속 그는 울고 있다 이 지극한 어둠을 내리긋는 바이올린의 활 천상의 뛰노는 음 © 김종란 2021.06.03

|詩| 꿈, 생시, 혹은 손가락

쟤는 지금 자고 있어요 하는 어머니 목소리 들린다 나는 자고 있구나 어머니도 지금쯤 편안히 주무시고 계시려나 기타와 바이올린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어 하나는 작고 하나는 좀 큰가, 그게 다야? 기타인지 바이올린인지 음정을 규정하는 당신 왼쪽 가운데 손가락 끝이 떨린다 실물 크기 천연색 손가락이야 당신 손가락 네 개가 미친 듯 한가을 메뚜기 떼처럼 인간성 없는 컴퓨터 칩처럼 지직 지지직 바삐 움직이고 있네 나른하고도 약간 서글픈 장면이라 해야 좋을지 몰라요 © 서 량 2007.11.17

발표된 詩 2022.05.20

|컬럼| 161. 어린이 놀이터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친구에게서 어느 날 느닷없이 전화가 온 김에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치자. 요사이 뭘 하며 지내냐, 하고 물어 봤을 때 "응, 나 그냥 놀고 있지."라고 그가 대답했다면 그건 아무래도 백수건달로 빈둥대며 지낸다는 말이다. 이럴 때 우리가 무심코 쓰는 '놀다'라는 말은 좀 부정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당신은 '놀다'에는 '쉬다'라는 좋은 의미가 숨어있다고 겸손한 표정으로 말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놀다'라는 단어는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인상을 풍기면서도 휴식한다는 뜻 또한 있는 것이 참으로 수상한 노릇이다. '노릇'이라는 말도 '놀이'나 '노름'처럼 '놀다'에서 생겨난 순수한 우리 말이다. 하다 못해 '노래'도 옛날 말 '놀애'처럼 '놀'자가 들어가고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