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 6

넘어지다 / 김정기

넘어지다 김정기 쓰러지진 않았다 결코 잡을 수 없는 시간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일어섰다 비 내리는 정원에서 어린 날 장터에서 70년대 청와대 앞에서 우리 집 거실에서 넘어지다. 그냥 쓰나미로 덮쳐오는 나이에 밀리지 않으려 삭아가지 않으려 해도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달빛은 숨을 죽인다 젖은 바람도 비켜간다 산이 허물어지고 강물이 멈춰도 힘센 손에 들려서 다시 일어섰다 넘어져도 보이는 햇살 만져지는 바람결 멀어져 간 내 몸에게 사과한다 © 김정기 2019.12.07

뼈의 은유 / 김정기

뼈의 은유 김정기 처음으로 뼈들이 사는 마을을 기웃거렸네 어느 날부터 그들은 수런거리기 시작했고 낮은 울음이 낯익어 놓아주려고. 그래도 모반은 면하려고 잘 드는 가위로 싹둑 잘랐네 그런데 흔들릴 때마다 쏟아지는 가루백묵 닳고 삭아서 마른 소리가 난다. 미안하게도 그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네 허물어지는 관절에도 유혈은 없다. 아직 껍질 안에 있는 길을 살피며 점점 젖어가는 옷 안에 잔뼈들의 흐느낌이 들리는 한밤 오금이 저리고 떨리는 삭신을 들켜 쥔다. 빼앗긴 칼슘에도 반란은 일어 오래된 침묵에 뼈아픈 것들이 숨어사는 곳에는 눈물에도 뼈가 있었네 바람결에도 뼈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나니 멀지 않은 길이 아득하다. © 김정기 201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