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냉이 김정기 아궁이 불을 끄고 들길로 나섰다 민들레는 피가 굳어 거친 숨을 내쉬고 강아지풀도 바람에 시달려 소리지른다 한풀 꺾인 가을 풀 섶에서 보랏빛 꽃 한 송이 엷어가는 햇살에 몸 적신다 매운 맛을 키우려 숨어있는 고추냉이 속으로 숨을 고르며 독을 키운다. 감추어둔 말을 쏟으며 날파리가 기어간다 기다리는 것도 지친 발걸음에 부서지는 가을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당신은 어디에도 없구나 버려진 풀끼리 쓰다듬는 틈새에 보이는 것이 있다 빛 알갱이들이 무리 지어 태어나는 고추냉이 속살. 다시 불을 지피고 매운 맛에 떤다. © 김정기 2010.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