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다 3

|컬럼| 54. 만지기와 빼앗기

만지기와 빼앗기 'take'라는 단어를 시사영어사 94년도 판 영한사전에서 찾아 보니 잡다, 붙잡다, 얻다, 받다, 가져가다, 데려가다, 고르다, 받아들이다, 맡다, 취하다, 등, 타동사로 30개, 뿌리를 내리다, 미끼에 걸리다, 등 자동사로 11개, 그리고 취득, 매상고 등 명사가 5개로, 장장 두 페이지 반에 걸쳐서 그 뜻과 해설이 잡다하게 펼쳐져 있다. 이것은 즉 'take'에 해당하는 딱 한마디의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는 사연이다.한국 사람들에게 'take'는 거칠고 생소하고 어려운 영어다. 우리들 입에서 저 흔해 빠진 'Take it easy' 혹은 'Take care'도 적재적소에 총알처럼 재빠르게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 짧은 관용어에 해당하는 개념이 미국식으로 머리 속에 꽉 박혀 있지 않기 ..

|컬럼| 33. 필(feel)이 꽂히다

필(feel)이 꽂히다 근래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우리말 슬랭, '필(feel)이 꽂히다'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이 이상한 구어(口語)는 영어와 우리말의 조합으로 태어난 혼혈아적인 표현이다. 세상이 급한 세상이라 때로는 아예 '필 꽂히다'라며 조사를 빼기도 하고 강조를 할 때는 '필이 팍팍 꽂힌다'며 힘주어 말하면서 언어생활의 최첨단을 걸어가는 우리들이 아닌가. 어떤 '느낌'이 들었다고 차분하게 말하는 대신에 꼭 그렇게 'f'와 'p'를 분별하지 못하는 영어발음을 재래식 한국말과 교배시키는 우리의 정서가 놀랍고 새롭다. 무엇이 꽂히다니! 얼마나 아플까.  이것은 가령 전신을 새까만 천으로 휘감은 닌자(Ninja)가 어느 날 밤 지붕에서 뒷마당으로 사뿐 뛰어내려 표창이라도 휙! 휙! 던지는 발상인..

|컬럼| 11.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매를 맞거나 꾸지람을 들은 후에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을 우리 속담에서 ‘매끝에 정든다’ 한다. 자극을 가하는 쪽과 받는 쪽이 서로에게 점점 익숙해지면서 정이 두터워지는 인간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맞다’는 ‘서로 어긋나지 않고 틀림이 없다, 일치하다’라는 의미. 답을 옳게 ‘맞추다’ 할 때는 쌍방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하다못해 남녀가 입을 맞출 때도 입과 입을 일치시켜야 한다.  그러나 또 한편 ‘맞다’는 매를 맞을 때처럼 ‘구타 당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이를테면 ‘너 맞고 싶어?’ 하며 누가 주먹을 불끈 쥔다면 그것은 명실공히 그 사람이 상대방을 때리고 싶다는 의도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싶은 심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