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7

|컬럼| 413. 내장(內臟) 대화

-- There are no facts, only interpretations: 실제는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다. - 니체 (1844~1900) 정신과 수련의 시절, 부드러우면서 날카로운 언변이 뛰어났던 지도교수가 있었다. 사람의 무의식을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는 그는 나에게 환자 마음을 직감적으로 파악했다면 오래 뜸들이지 말고 그것에 대하여 말하라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잘 각색된 영화에서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것. 틀려도 좋으니까 서슴없이 소견을 피력하라는 그의 조언이 지금도 흔쾌하다. 단, 환자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데면데면한 관계라면 그러지 말 것. 당신과 나의 의사소통은 두 저자가 머리를 맞대고 공을 들여 만들어 내는 공동작품이다. 그것은 붙박이 기념사진이 아니라 끝임없..

|詩|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신(神)을 폭행한 사람들 여럿 문 쪽을 향하여 엘리베이터 안에 단정하게 서 있다 당신은 빨리 흥분한다 초록이 극명하게 투명해지는 순간 두 남녀가 키스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아노 반주에 첼로가 독주하는 굵은 멜로디 배경음악 내가 살지 않은 내 삶에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 의무의 족쇄를 벗어나는 최면술의 꽃이 피어난다 몸이 통통한 안나 오와 목이 긴 루 살로메가 풀밭을 걷고 있어요 눈물은 감정 완화 감정 빚의 탕감, 눈물은 달콤해 정말 이제 니체의 눈물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다 *When Nietzsche Wept: 현 스탠포드 명예교수인 실존주의 정신과의사 Irvin Yalom (1931~ )의 소설. 같은 제목으로 2007년에 영화가 나옴. Nietzsche, Breuer, Freud, Lou Salome..

2021.11.18

|컬럼| 402. 꽃의 맛

옛날 정신과 수련의 시절에 어느 우울증 환자에게 “Keep your chin up! (턱을 치켜 드세요! - 힘 내세요!)”라 한 적이 있다. 그 퉁명스러운 60대 여자는 그런 말은 자기도 할 수 있다면서 발칵 화를 내면서 방을 나가버렸다. 낯이 뜨거웠다. 지도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건 마치도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충고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가 말한다. 내과의사가 배가 아픈 환자에게 아프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싸가지 없는 말을 한 셈이다.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하세요! 하는 싸구려 입버릇처럼.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나중에 ‘will power, 의지력(意志力)’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다. 그게 뭔지 모른다며 설명을 해달라 해서, ‘will’은 의도(..

|컬럼| 361. 말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

-- To live is to suffer. To survive is to find some meaning in the suffering. (Nietzsche) -- 삶은 시달림이다. 살아남는 다는 것은 그 시달림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 (니체) 제임스가 죽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망원인이었다. 몸이 뚱뚱하고 지능이 남들보다 많이 낮은 반면에 성격이 참 원만했던 제임스가 엊그제 죽었다. 내가 묻는 말은 전혀 대답하지 않고 딴소리를 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아무 결론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해도 늘 좋은 기분을 남겨주는 병동환자였다. 내과의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저도 제임스를 좋아했다고 말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나는 코로나 환자와 가족과 응급실 의사들의 미치광스러운 나날에 대하여 잠시 생각한다. 지구..

|컬럼| 243. 사람 됨됨이에 관하여

성격장애 병동을 맡아 일하면서 시시때때로 환자들에게 성격장애에 대하여 강의를 하다 보니 정신과 의사로서가 아니라 일반인으로서 그리고 심지어는 정신병 환자의 각도에서 사람의 성격에 대하여 자주 생각한다. 'personality'는 성격(性格)이 아니라 인격(人格)이라 번역해야 마땅할 것 같다. 'person'이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누가 인격이 있다, 없다 하면서도 성격이 있다, 없다 하지 않는 우리말 습관을 보면 인격에는 어떤 프리미엄이 붙지만 성격이란 눈이나 코처럼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person'은 본래 옛날 로마 극장에서 연극배우들이 쓰던 '가면(假面)'을 뜻하던 라틴어'persona'에서 유래한 말이다. 서구인들은 가면을 쓰고 남들을 대하는 인간의 본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