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3

|칼럼| 464. 왜 너 자신을 빼놓느냐

스티브는 전형적인 정신질환 증상이 전혀 없는 40대 중반의 백인이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변덕이 죽 끓듯 하면서 때로는 고집불통이고 걸핏하면 화를 낸다. 화가 치밀면 고함을 지르고 벽을 주먹으로 쾅쾅 때리는 버릇이 있다. 그는 수년 전에 저처럼 성미가 불 같은 걸프렌드와 한동안 같이 살았다. 그들은 언쟁이 잦았다. 여자가 집을 나가고 그는 심한 상실감에 빠진다. 이윽고 상실감이 분노로 변하면서 모든 세상 사람을 원망하고 저주한다. …스티브야, 너는 도대체가 왜 자기 자신은 제켜놓고 남들에게만 신경을 쓰면서 그토록 불행한 삶을 사느냐. --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악의를 품고 나를 못살게 굴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러는 겁니다. …자신은 남에게 실수로라도 못되게 군적이 없느냐. – 나는 되..

|컬럼| 375. 한쪽은맞고다른쪽은때린다

홍상수 감독의 2015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보았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타이틀이 흥미를 돋군다. 미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말과 생각의 맞고 틀림이 당신과 나를 잔뜩 긴장시키는 2020년 11월 초순이라 더욱 그렇다. 지금, 그때, 맞다, 틀리다? 네 축이 네 가지의 조합을 빚어낸다. 영화 타이틀은 현재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을 솎아내어 적폐청산이라도 하려는 듯 금방 덤벼들 기색이다.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았다, 하면서 과거지향성 냄새를 풍기면 어떨까 하는데. 전체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때도 다 틀렸다! 또는 둘 다 맞다! 하며 선언할 수도 있겠지. 근데 맞고 틀림에 대한 판단은 누가 내리는가. 나? 너? 시사비평가? 내로남불을 내..

|컬럼| 352. 내 상황 속에 내가 없다

환자가 내게 대충 이렇게 말한다. “형이 정신병이 있었고, 누나는 유명한 재즈 가수였고,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평생을 쇼핑몰에서 일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다가 마침내 나는 응수한다. “모든 집안 식구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하면서도 본인 자신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게 흥미롭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거칠게 반응한다. 환자가 부모와 형제자매에 대한 원망심을 털어 놓고 싶어하는 마당에 내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는 세션이면 세션마다 쉬임 없이 똑같은 카타르시스 시나리오에 매달리고 나 또한 끈임없이 똑같은 사연을 귀담아듣는다. 정신상담이 증오심의 배설에서 그치는 경우에 더 이상 아무런 진전이 없는 제자리 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은 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