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에서 그룹테러피를 하다 보면 혼자서만 떠들어대는 환자가 있다. 약속이라도 한듯 칼로스가 매양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별명은 ‘loudmouth, 떠버리’다.
횡설수설하는 그에게 다른 환자 왈, “너 말 좀 고만할 수 없냐. 침묵이 금이라는 걸 모르냐?” - 내가 슬쩍 끼어든다. “야, 도대체 침묵이 금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참, 영어 속담에 ‘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en’이라는 말이 있지.
이건 배려심 많은 사람들이 조곤조곤 심금을 털어놓는 그런 세련된 그룹테러피가 결코 아니다. 잠시 내가 방심을 하는 순간에 군중을 지배하는 의식의 흐름은 도떼기시장처럼 엉망진창이 된다. 질서를 유지하는 내 그룹 리더십이 더없이 망가진다. 나는 언어의 교통순경이다.
금이 은보다 더 비쌉니다. - 은이 뭐가 나쁘길래. - 은도 괜찮습니다. 내가 얼른 꿰어 맞춘다. - 잘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얘기하면 말이 길어지지. 말이 길어지면 혼동이 생기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단다. 우리는 혼동을 열나게 싫어하잖아. 그래서 침묵이 떠들어대는 것보다 좋다는 거다, 알겠느냐. - 그렇다면 말을 짧고 분명히 하면 됩니까.
언어의 교통순경이 초등학교 선생으로 변신한다. ‘Doctor’의 어원이 라틴어로 ‘가르치다’라는 뜻이었어. 우리말로도 의사의 ‘사’는 스승 師. 변호사의 ‘사’는 선비 士. ‘의사 선생님’은 저절로 나오지만 ‘변호사 선생님’은 입에 붙지 않지.
시인, 수필가, 소설가들에게 침묵이 금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자칫 작품활동을 중단하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에.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변호사는 자꾸만 떠들어야 해. 뭐? 정치가들은?
그룹세션 중에 끄덕끄덕 졸거나 허공을 응시하며 경미한 뇌사(腦死)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보다 칼로스에게 인간적으로 정이 간다. 헤밍웨이 스타일로 말을 짧게 하면 되겠다는 환자에게 경의감이 솟는다.
찰스 슐츠(Charles Schulz: 1922~2000)가 그의 만화에 탄생시킨 찰리 브라운을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항상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만 치는 금발의 슈로더를 흠모하는 수다쟁이 루시가 노점 정신상담소를 차린다. 1959년 시세로 한 건당 5센트. 루시도 칼로스처럼 말이 많다는 소문이다.
말 못하는 강아지 스누피가 루시를 찾아온다. 스누피는 말이 없다. 루시가 혼잣말로 뇌까린다. - “What can you do when the patient doesn’t say anything? - 환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는 어쩌나요?”
내가 루시에게 말한다. 말 못하는 아기에게 엄마가 자꾸 말을 해야 아기가 말하는 법을 배운단다. 언어 능력이 딸리는 환자에게 의사가 연거푸 떠들어야 돼. 스누피에게 거듭거듭 애정 어린 말을 해주거라.
논리의 비약을 하면서 내 자신이 루시가 된다. 그리고 루시처럼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 언변이 딸리는 신도(信徒)가 신과의 의사소통을 어찌해야 하나요. 신의 리더십 스킬은 어떤가요. 신도 침묵이 금이라 생각하나요.
칼로스가 내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 신과 소통하고 싶으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세요. 기도를! - 칼로스야, 나도 스누피처럼 비언어적이란다. 언어의 ‘유아, infant’ 상태야. ‘infant’는 라틴어로 말을 못한다는 뜻이었단다. 말을 못하는데 어떻게 기도를 하느냐. 말 잘하는 엄마가 말을 해야지, 아기가 어떻게 말을 하니.
© 서 량 2024.02.18
뉴욕 중앙일보 2024년 2월 2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4/02/20/society/opinion/202402201748324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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