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463. 자극 과잉시대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곳곳 확성기에서 정신과 응급상황을 외치는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숨가쁘게 “코드 그린!” 소리친 후 병동번호를 알린다. 평온한 목소리로 말해주면 안 될까. 허기사 그러면 아무도 급히 반응하지 않을지도 몰라.

 

꽃을 뜯어먹으려는 사슴이 앞뜰을 침입하는 순간 “어이!” 하며 가라고 신호하면 싹 무시당한다. “야!” 하고 고함을 질러야 후다닥 도망간다. 사슴도 정신병원 의사들도 경미한 자극에는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이다.

                                                          

‘sensory overload’ 하면 얼른 귀에 들어오는 말을 놓고 사전은 감각과부하(感覺過負荷)라 묵직하게 해설한다. 참으로 뻑적지근한 한자어다. 자극이 지나치면 금세 접수할 수 있지만 낮은 목소리는 신경계통에 등록조차 되지 않는 거다. 약물의 복용량도 마찬가지. 과량은 극심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소량은 무효하다. 생물체는 사람이건 사슴이건  늘 예민한 상태를 넘나들고있다.

 

세포는 생존을 위하여 세포막으로 외부 물질을 차단한다. 사람 몸을 감싸고 보호하는 피부, 도둑의 접근을 사전에 방지하는 집의 담과 벽, 자외선을 막아내는 선글라스도 같은 이치. 또 있다 심성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자폐증 환자의 심리적 폐쇄 장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선, 기타등등, 예를 들자면 부지기수다.

 

외부자극은 그렇다고 치자. 내부자극은 어쩔 것인가. 아무리 잠을 청해도 말똥말똥한 정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저런 잡념들은 어떤가. 환자들이 세션 도중에 고막을 울리는 환청증세를 어찌하겠는가. 한 정당(政黨)을 외부에서 치고 들어오는 외부공격도 벅찬 실정에 내부적 갈등이 불철주야 일으키는 과잉자극 같은, 당의 내부가 “찢어지는” 현상을 무슨 수로 대처할 것인가.

 

2024년 3월 16일 오하이오주의 한 국제공항 선거유세에 참석한 도날드 트럼프가  “내가 낙선되면 나라가 피바다(bloodbath)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는다. ‘피바다’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서 곧잘 쓰던 말이라 내 귀에도 익숙한 자극적인 단어다.

 

피바다 뿐만 아니라 ‘몹시 슬프고 분하여 나는 눈물’이라 사전에 나와있는 ‘피눈물’도 있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를 키울 때 피땀을 흘리며 키우나. 핏빛 노을. 갓난아기를 핏덩어리라 부르는 습관, 등등. 우리는 피를 좋아하는 족속이다.

 

오랜 세월동안 문명의 혜택이 잉태해 놓은 부작용, 이를테면, 과속으로 질주하는 컴퓨터의 작동장애, 도로공사 굴착기의 소음, 낙엽 치우는 장비가 뇌를 뒤흔드는 굉음, 앰뷸런스의 경적, 와이파이 접속이 불량한 스마트폰을 입에 대고 목청을 높이기, 등등, 과잉자극에 시달리다가 21세기 지구촌 인류의 중추신경에 굳은 살이 박힌 것은 아닌지 몰라요.

 

‘Chinese water torture’이라는 말이 있다. ‘이마에 물을 떨어뜨려 정신이 돌게 하는 고문’이라는 뜻. 그 유래에 대하여 위키피디아에 소상하게 나와있다.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오시닝(Ossining)의 ‘Sing Sing Prison’에서 1860년에 찍어 놓은 사진이 섬찟하다. 사람 이마에 차가운 물방울을 불규칙적으로 오래 떨어뜨리면 환청, 망상, 현실감각상실이 일어난다는 기록이다.

 

이 그로테스크한 표현은 낙수물이 돌을 뚫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수적천석(水滴穿石)과 연관을 맺는다. 돌은 뚫려질지언정 사람처럼 광끼를 일으키지 않는다. 물방울 같은 경미한 자극에도 홀까닥 넋이 빠지는 호모사피엔스에게 달겨드는 과잉자극의 끝은 어디인가.

 

© 서 량 2024.03.17

뉴욕 중앙일보 2024년 3월 20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4/03/19/society/opinion/20240319205114612.html

[잠망경] 자극 과잉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