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에 환청 증세가 있는 환자들이 많다. 그들은 대체로 환청에 대하여 내게 소상하게 말하지 않는다.
50대 중반의 필립이 다른 병동에서 내 병동으로 꽤 오래 전에 후송돼 온 이유는 그곳 정신과의사에게, “Stay away from me! 가까이 오지 마!” 하며 복도에서 음산하게 말하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속 마음을 남에게 쉽사리 털어 놓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 얘기를 하자 하면 낮은 목소리로 거부한다.
필립이 외로운 자세로 병동을 걸어간다. 뒷짐을 지는가 하면 양손을 위로 올리며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무슨 시그널을 보내는 동작을 취하기도 한다. 다른 환자들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그를 회피하려는 눈치다.
그가 내 오피스 앞을 지나가며, “You don’t understand, do you? 이해를 못하지요, 합니까?”라고 한 후 다른 말을 계속하면서 간호원실 쪽으로 걸어간다. 좀 괴로워하는 얼굴 표정의 그는 옛날에 유명 자동차 회사 간부급으로 일한 전력이 있다.
그룹테러피 시간. ‘internal stimulus, 내적자극(內的刺戟)’에 대하여 얘기하겠다고 환자들에게 토픽을 소개한다. 누구나 ‘외부적 자극’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은 뚜렷하지만, 주야장천 무엇인가 느끼는 우리의 ‘내부적 자극’은 잘 알지 못한다는 서론을 펼친다.
‘internal stimulus’가 ‘inside stimulus’로 말이 바뀐다. 그리고 ‘inside stimulus’가 ‘inside job’으로 또 바뀐다. ‘인사이드 잡’은 범죄영화에 자주 나오는 슬랭으로서 ‘내부자 범행’를 뜻한다. 필립이 몰래 웃는다. 어쩌다 내적자극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이런 슬랭으로 전락했는가.
‘인사이드 잡’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feeling, anxiety, fear, anger, wish, love, desire - 느낌, 불안, 공포, 분노, 소망, 사랑, 욕망’, 등등이 있단다. ‘평화’는? 누가 “Peace is boring, 평화는 따분합니다’ 하고 일갈한다. 좋아, 그러면, ‘생각’은?
“Are thoughts inside jobs? 생각도 인사이드 잡이냐?” 한 두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은 어디에서 오느냐. “Thought is coming from mind! 생각은 마음에서 옵니다!”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지.
‘thought, 생각’은 ‘think, 생각하다’의 과거형과 같은 말이다. 동사의 결과가 명사다. 생물체는 우선 먼저 행동하고 본다. ‘think’는 고대영어에서 ‘기억하다, 상상하다, 의도하다, 욕망하다’라는 의미였고 전인도 유럽어로는 ‘느끼다, 고마워하다’라는 뜻이었다. 다 얼추 어슷비슷하게 들리지 않는가.
‘mind, 마음’은 고대 영어로 ‘기억, 목적, 의식, 지능, 지성’이라는 의미였다. 14세기에 ‘out of one’s mind, 미치다, 실성(失性)하다’라는 관용어가 생겨났다. 생각이 마음을 벗어나면 실성하는 법. 마음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서 튼튼하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보다 마음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고?
필립은 환청증세를 다스리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환청을 내부적 상황이 아닌 외부상황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약해진다. 꿈을 꾸면서, 꿈이라는 환상을 현실로 받아드리는 생각에 반응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신과 나의 내적자극은 대충 ‘인사이드 잡’인 것이다.
© 서 량 2023.07.09
뉴욕 중앙일보 2023년 7월 12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3/07/11/society/opinion/202307111724101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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