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의 별명은 ‘loudmouth, 수다쟁이, 떠버리’다. 영어나 우리말이나 이 호칭은 말이 많은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쓰인다.
사사건건 할말이 많을 뿐더러 한번 말을 시작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대는 찰스. 특히 아침 조회시간에 다른 환자들의 빈축을 산다. 말의 앞뒤가 맞건 틀리건 그의 목소리는 일관성 있게 거칠다. 어떤 때는 고함도 지른다.
‘shout’는 ‘소리 지르다, 고함치다’로 번역된다. 큰 반감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해도 어딘지 사나운 기세가 깃들여진 말투다. 광화문 같은 데서 수많은 인파가 목청을 돋구어 소리치는 정황에 걸맞는 표현이다. ‘shout’와 ‘shoot, (총 등을) 쏘다’는 같은 말뿌리에 왔다.
축구 경기에서 관중이 환호하는 ‘슛~!’, “회식하러 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하는 ‘shoot’! 사람 목소리도 돈도 총알에 비유된다.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넘쳐 흘러~♪♫” 하며 소리치는 백지영의 2008년 히트곡,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yell, 외치다’도 ‘shout’와 비슷한 의미지만 거부감이 드는 말이다. 소리를 빽! 지른다는 뉘앙스가 짙다. 고대 영어에서 이 말은 워낙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었다. 전인도유럽어 ‘ghel, 겔’에서 현대영어의 ‘yell, 옐’이 태어난 것이다. 지금도 ‘nightingale, 꾀꼬리’의 끝부분에 ‘게일’이라는 소리가 살아있다.
‘scream, 악을 쓰다, 비명을 지르다’은 극단적 사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공포영화 여주인공의 꺄악! 하는 비명이 귀에 들리는 기분이 든다면 당신은 언어학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다.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 갈매기 우는 소리를 ‘screech’라 하는데 ‘scream’과 거의 같은 소리의 의성어다. 우리말로는 ‘끼익~’, ‘끼룩끼룩’! 다 쌍기억(ㄲ) 소리가 난다.
소리를 지른다는 표현으로 ‘exclaim’도 있다. 감탄한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말. 그래서 감탄사 부호(!)를 ‘exclamation mark’라 한다. 13세기에 ‘yell’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던 ‘cry’는 또 어떤가. 고대 불어와 라틴어로 ‘울부짖다’, 혹은 ‘(돼지처럼) 꽤액꽤액 소리지르다’라는 뜻이었는데 눈물을 뚝뚝 흘린다는 의미로 변천된 것은 16세기였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왜 때때로 고함을 치고 소리를 지르는가. 제 스스로의 감정에 겨워 떠들어대면서 말을 그치지 못하는가. 찰스는 왜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아낌없이 받아가면서 공개석상에서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는가.
찰스보다 10년 정도 나이가 어린 데니스가 그를 나무라는 발언을 적극적으로 자주 한다. 그는 찰스에 비하여 부드럽고 커다란 목소리를 타고난 것 같다. 왕왕 울리는 베이스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성대의 소유자.
그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움이 없을 뿐더러 악을 쓴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고 돼지 멱따는 분위기는 더더구나 없다. 찰스가 너무 떠버리기 때문에 병동이 혼란스러워진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은 데니스!
그는 병동이라는 공동사회에서 일어나는 환자들의 이해상관과 정치적(?) 갈등에 대하여 시시때때 큰 목소리로 핵심을 콕콕 찌르는 발언을 한다. 내막을 밝힐 수는 없지만, 엊그제 그가 우렁찬 언성으로 찰스를 향한 ‘사이다 발언’을 했을 때 밑도 끝도 없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노래가 떠올랐던 거다. 제목이 주는 전율 말고 가사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 서 량 2023.06.11
뉴욕 중앙일보 2023년 6월 14일 서량의 고정 컬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3/06/13/society/opinion/202306131732279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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