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36. 호들바람

서 량 2015. 6. 15. 11:32

가볍고 방정맞은 행동을 호들갑이라 하고, 어수선하고 시끄럽게 떠벌리는 짓을 흐들갑이라 이른다.

 

호들호들은 작은 팔다리나 몸이 가냘프게 떨리는 것을, 그리고  흐들흐들은 옷감 같은 것이 부드럽거나 물체가 물렁물렁한 것을 뜻한다. 이렇듯 한자어가 아닌 순수한 우리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가 난다.

 

호들갑도 흐들갑도 사람 행동이나 옷의 질감이 선연하게 느껴지는 의태어다. 호들갑이 어딘지 여성적인 인상을 풍기는 반면 흐들갑에는 그런 뉘앙스가 없는 것 같다. 회오리바람을 경상도 방언으로 호들바람이라 한다는 것을 당신은 혹시 아는지 르겠다. 

 

호들갑을 동사로 쓸 때 호들갑을 떤다한다. 대체로 우리의 행동 중에 경망스러운 짓을 묘사할 때 떤다는 보조개념이 자주 들어간다. 청승을 떨고, 재롱을 떨고, 엄살을 떨고, 아양을 떨고, 수다를 떨고, 방정을 떨고, 육갑을 떠는 등등이 그 좋은 예다.

 

이상의 사실 미루어보아 '호들갑을 떤다'는 호들(호들) ()갑을 떨다의 준말이라는 학설을 내세우면서 나도 우리말 어원학에 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방정을 떤다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았다. 사전은 방정을 찬찬하지 못하고 경망스럽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라 풀이한다. 원래 방정은 방정(方正)이 그 의미가 변한 말로서, 언행이 네모지고 반듯하다는 뜻이었다. 우리말 습관이라는 것이 어쩌다 방정맞다가 정 반대의 방정하지 못하다는 의미가 돼버린 것이다. 방정도 보통 방정이 아니라 오두방정을 떤다 하면 방정이 극에 달한 상태다. 같은 말을 전라도 방언으로는 깨방정을 떤다고 한다.

 

호들갑을 떠는 것과 비슷하게 불안정한 마음을 나타내는 말로 안절부절하다가 있다. 이 표현도 원래는 안절부절못하다라는 표준어가 변질됐다는 점에서 방정맞다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이런 식의 반어법에 우리는 곧잘 빠진다. 일설에 의하면 안절부절은 안정부 불안정부(安定不 不安定不 편안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했다는 소문도 있다.

 

안달복달하거나 안절부절못한다는 말을 영어로 뭐라 할까 하며 궁리 중에 ‘butterflies in the stomach - 뱃속에 나비라는 관용어를 찾아냈다. 직역하면 속이 메슥메슥하다는 말이지만 울렁증을 느낄 정도로 차분하지 못한 심리상태를 들어내고 있다.

 

‘like a chicken with its head cut off - 머리 잘린 닭처럼은 자타가 공히 잔인하고 극심한 표현이다. 또 있다. 테네시 윌리엄즈의 희곡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가 시사하는 ‘like a cat on a hot tin roof’도 미치고 환장하게 안절부절못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는 둘째 가라면 서럽다.

 

‘ants in one’s pants - 바지 속에 개미를 상상해 봐도 몸의 특정부위가 근질거릴 것이다. 그래서 ‘antsy - 개미가 득실거리는도 불안하다는 뜻의 슬랭. 마약 중독자들이 금단현상을 겪을 때의 불안증상, ‘monkey in one’s back – 등에 원숭이또한 만만치 않다. 얼마나 성가시고 괴로울까.

 

이처럼 미국식으로 불안한 정신상태에는 나비, , 고양이, 개미 혹은 원숭이 같은 동물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과 내가 안절부절못하는 심리는 사람이라기보다 동물적인 생리에 가까운 메커니즘이다

 

지구촌 세상풍파를 마주하는 여정에서 우리가 혹가다 호들갑이나 방정을 떠는 것도 경상도의 호들바람처럼 아주 일시적인 일이다. 영원한 호들바람은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루라도 빨리 작금의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에서 너끈히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 서 량 2015.06.14

-- 뉴욕중앙일보 2015년 6월 17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