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란의 詩모음

조선고추 / 김정기

서 량 2023. 1. 13. 18:57

 

조선고추

 

                       김정기

 

삼십 년 넘게 태평양을 건너오던 물결 타고

조선고추 한 그루

파도 칠 때마다 휘청거리는 수족

허공에 심겨져 실뿌리 내렸네.

유리창너머 송화 가루 먹은 소나무

오리나무가 청청한 하늘을 찔러도

한반도에 이는 황사바람에

발 담그고 자라는 토종고추

그 매운 맛.

 

뉴욕의 바람과 한몸 되려

억울하고 독한 것 삼키고 삼킨

어질고 흰 고추 꽃이 지고

톡 쏘게 매운 고추 한 알

당신의 몸에서

담금질로 익어가는

가늘디가는 핏발 선명하네.

 

아니라고 손사래 쳐도

모종된 고추 한 그루에

매어달린 우리는 아리고 아린

조선 고추가족.

 

© 김정기 2014.06.10

'김종란의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은 눈 / 김종란  (0) 2023.01.14
북해도 / 김종란  (0) 2023.01.14
강물이 스며드는 시간 / 김종란  (0) 2023.01.13
삼나무 숲을 얻었다 / 김종란  (0) 2023.01.13
수 / 김종란  (0) 202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