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게시, 담론

|게시| 이병률 시인의 시집『찬란』중에서

서 량 2011. 2. 19. 08:59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이병률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