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은 15 세기 이전 고대영어에서 '모이다; 어울리다; 의견을 같이하다' 라는 뜻이었다. 그 말의 잔재가 현대영어의 'gather(모이다; 함께하다)'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람들이 모이거나 어울리고 공감하는 것처럼 좋은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렇게 'good'에는 인간이 표범처럼 혼자 다니지 않고 사자들처럼 집단생활을 추구하는 동물이라는 내력이 숨어있다. 인간과 사자의 공통점은 생존의 어려움에서 오는 극심한 외로움에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도 알다시피 'god'와 'good'은 거의 같은 발음이다. 고대 홀란드 말로 신을 'god'이라 했고 '좋다'는 'goed'라 했다. 독일어로도 신은 'Gott'이고 '좋다'는 'gut'이다.
이렇듯 신은 좋은 것을 대표한다. 미국 돈에 써 있는 'In God We Trust'는 특정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In Goodness We Trust (우리는 좋은 것을 믿는다)'로 싱겁게 풀이해도 좋으리라. 신은 우리들이 스스로를 기분 좋게 하는 집단의식이다. 인터넷으로 치자면 '즐겨찾기'의 맨 꼭대기 목록이다.
'Good-bye'는 'God be with you'를 줄인 표현으로 모든 양키들이 이구동성으로 사용한 시기가 19세기 초엽이다. 근세에는 'good'마저 싹둑 짤라 없애고 그냥 'bye'라 하거나 혹은'bye-bye' 해서 리듬감을 살리기도 한다. 이 말은 다른 뜻으로 '좋음이 함께 하세요'가 된다. 요사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행복하세요'나 '좋은 일만 있으세요'와 같은 개념이다.
신(神)과 '좋음'이 같은 뜻으로 통하는 예로 우리말에 기분이 좋다는 뜻으로 '신이 난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gossip (수다 떨다, 잡담하다, 험담하다)은 고대영어 'godsib'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의 뒷부분의 'sib'는 'sibling(친척)'이라는 뜻이다. 좋은 친척들끼리 모이면 수다를 떠는 것이 인지상정이려니. 그들은 잡담을 하는 도중에 험담도 한다. 명절날이나 제삿날 대가족이 모여 부침개라도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지글지글 부치다가 멀쩡한 사둔들 사이에 격렬한 말싸움이 붙지 않았던가.
'act of God'는 '신의 행동'이 아니라 지진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을 뜻한다. 신의 노여움을 사면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 같은 큰 재앙이 발생한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이다. 양키들의 신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신을 믿는 양심적인 소시민을 'god-fearing small citizen'이라 한다. 그들의 신은 절대로 동양의 부처님처럼 전폭적인 자비심에 푹 빠지는 법이 없다. 당신은 부처가 천재지변을 일으켜서 인간들을 골탕 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서구의 신이 내리는 저주는 인류 전체를 혼쭐나게 벌 주는 식이다. 군대로 치면 단체기압. 양키들의 신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시쳇말로 뼈도 못 추린다. 그래서 그들이 제일 벌벌 떠는 말이 'God damn'이 아니던가.
반면에 동양적인 욕설은 지극히 개인적인 발상에서 그친다. 우리말의 '빌어먹을 놈'이나 '염병할 놈' 같은 욕은 미운 털이 박힌 놈이 사업에 왕창 실패라도 해서 갑자기 알거지가 되어 남의 밥을 빌어먹으라는 기원이거나 아니면 전염병에 걸려 신체적인 고생을 하기를 소망하는 정신상태다. 그러나 우리의 동양적인 저주심은 신의 막강한 힘을 빌려 상대가 천재지변 같은 재앙에 빠지기를 바라는 치사스런 심리상태가 아니다. 그만큼 마음 씀씀이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혹독한 구석이 전혀 없는 당신과 나에게 신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 서 량 2009.04.12--뉴욕중앙일보 2009년 4월 15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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