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74. 나비와 개구리

서 량 2009. 2. 16. 10:40

 입춘과 우수를 지나면 3월 초에 약속처럼 경칩(驚蟄)이 우리를 찾아온다. 겨우내 땅속에서 잠자던 벌레와 동물들이 우수(雨水)의 물벼락을 맞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는 경칩이다.

 

 경칩에 개구리 알을 먹으면 허리에 힘이 좋아진다 해서 나이 지긋한 우리 조상들은 턱수염을 바람에 휘날리며 이날 개구리 알을 찾으려고 산과 들을 헤맸다. 그리고 젊은 남녀들은 양키들이 발렌타인즈 데이에 초코렛을 깨물어 먹듯 서로의 사랑을 서명날인하는 상징적 행위로서 암수가 유별한 은행나무의 열매를 몰래 나누어 먹었다.

 

 개구리가 헤엄치는 동작처럼 섹시한 장면이 또 있을까. 그래서 허리가 부실한 우리의 선조들이 개구리처럼 행동하고 싶은 연상작용을 일으켰다 하면 당신은 얼굴을 붉히면서 그게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수영에 있어서 싱겁게 규칙적으로 목을 옆으로 돌리는 자유형보다 일정한 리듬감각으로 몸 전체가 물 속으로 쑥 들어갔다 쑥 나오는 개구리헤엄이 훨씬 더 동물적으로 보인다. 우리는 왜 '놀랄 경'에 벌레 충(䖝)자가 아랫도리를 차지한 '숨을 칩'의 경칩이 오면 곤충보다 개구리 쪽으로 신경을 쓰는 것일까. '봄 처녀 제 오시네~' 하는 우리 전통 가요의 가사는 사실 그 포커스가 봄철에 처녀를 바라보는 총각들의 개구리 같은 눈망울에 있었다.   

 

'spring'의 고대영어인 'springan'은 개구리처럼 '펄쩍 뛰다'는 의미였고 같은 어원의 범어(梵語) 'sprhayati'는 '열망하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열렬히 기다리던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했을 때 펄쩍 뛰며 전화를 받는 바로 그런 활기(活氣)의 발로다. 'spring'에서 용수철이라는 뜻이 파생되고 봄이라는 계절의 호칭으로 변한 것이 15세기 초엽.

 

 이제 나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떨까. 나비는 '나불나불' 날아간다는 데서 온 의태어라는 기록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꽃에서 꽃으로 나불거리며 옮겨 다니는 나비의 습성에서 화려한 사교계의 인사를 'social butterfly'라 한다.  

 

'butterfly'는 고대영어에서 마녀(魔女)들이 몸에 노란 버터를 바르고 날아다닌다고 믿었던 이상한 미신에서 생긴 단어라는 학설도 있다. 고대 희랍어로 나비를 'psyche'라 했는데 정신이나 영혼이라는 의미였다. 우리의 영혼이 나비처럼 날아다닌다는 발상이 재미있으면서도 일순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는가.

 

우리의 개구리와 나비가 경칩과 봄을 알려주는 좋은 소식임에 반하여 양키들의 개구리와 나비는 꼭 그렇게 상서로운 메시지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당신이 어느 예절 바른 양키여자와 이태리언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그녀가 'I have butterflies in my stomach'이라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면 그것은 음식이 이상해서 속이 거북하다는 뜻이면서 마음이 불안하다는 의미도 된다.  

 

당신은 양키들이 득실거리는 무슨 세미나에서 잔뜩 긴장한 상태로 어떤 질문을 하려는데 갑자기 목이 잠겨 말소리가 이상해 질 때 얼른 변명 비슷하게 'I have a frog in my throat'라 말하지 않았던가. 목 속에 개구리가 있다니? 그건 바로 목이 건조해서 개굴개굴 개구리 같은 소리가 난다는 뜻.

 

 어쨌거나 우리의 나비는 즐겁고 친숙하다. 봄 기운이 완연한 창 밖을 보면서 오래 동안 잊혀졌던 동요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속이 미식거리는 뱃속의 나비가 아니라 따스한 봄 아지랑이 속을 나풀나풀 날아가는 나비 이미지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봄바람에 꽃잎도 방긋방긋 웃으며/ 참새도 짹짹짹 노래하며 춤춘다.

 

© 서 량 2009.02.15 

--뉴욕중앙일보 2009년 2월 18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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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나비와 개구리

입춘과 우수를 지나면 3월 초에 약속처럼 경칩(驚蟄)이 우리를 찾아온다. 겨우내 땅속에서 잠자던 벌레와 동물들이 우수(雨水)의 물벼락을 맞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는 경칩이다.경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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