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2

잃어버린 모자 / 김종란

잃어버린 모자 김종란 시계 태엽 뒤로 감은 듯 옛날의 시간 유난히 목청 좋은 휘파람새 휘파람 소리 찔레꽃 희디흰 꽃망울들 피어 있다 잃어버린 모자 시간의 저쪽에 놓여있는 모자를 집는다 짙은 그늘의 안쪽 희게 피어 있는 옛 이야기들 그 환한 빛 숨은 어둠 사이에서 손을 내민다 무릎 꿇고 이야기를 안는다 분침과 초침 사이에서 들리는 휘파람 소리 눈 맞추며 들여다 보는 상흔 사람이 피우는 꽃 내가 그렸던 너의 모습 그 곳에 피어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 만개한 짙은 숲속에서 조용한 귀 엷은 미소 가리던 모자를 집는다 © 김종란 2013.05.08

우산으로 가리는 봄 / 김종란

우산으로 가리는 봄 김종란 봄에서 문을 닫아 걸고 우산으로 가려보는 낡은 미래 봄은 예외가 없지만 눈을 크게 뜨면 무모한 마음에 벚꽃이 날리는 걸 잠시 멈출 수 있지 목울대를 울리며 침을 삼키면 다시 암전 검은 알몸의 벚나무는 빛의 알갱이 머금은 눈물보를 터트리지 종이 보풀아기 진 익숙한 지도 마음 반쯤 감고 짚어오다 빛을 삼킨 너의 질주에 한 걸음 멈칫 비켜선다 길을 가득 메우며 우산들은 떠있다 저마다의 심정으로 봄의 소리를 가린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길 너는 휘파람을 불면서 날렵하게 달린다 돌아보며 씨익 웃는다 종이가 찢어지듯 봄우산은 쉬이 뒤집힌다 © 김종란 2010.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