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김정기 보이지 않는 물이 흘러간다. 몸 안에서 피어나는 안개가 가냘픈 실핏줄을 건드린다. 어두움은 가끔 힘줄을 만들어 어디까지 흘러 마지막 길을 트일 것인가. 어느 봄날 묻어두었던 사랑이 큰소리 내며 다가오는 황홀함. 갑자기 눈부신 세상과 아득한 것이 이루는 합창 내가 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봄 산수유가 주렁주렁 꽃밥을 터뜨리고 대책 없이 그늘 지우는 밑으로 그립다는 언어에는 눈을 돌리던 넝쿨들이 기어 올라오고 있다. 어디를 가나 당신의 흙이 묻어나는 터에 이 알뜰한 봄을 써 버리고 있다니 꽃송이 하나하나에 말 걸어보면 답장 없는 연서에 달콤한 말들을 내 이마에 쏟아 붇는다. 가는 봄날 한 자락을 붙잡고. © 김정기 2011.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