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왕십리 3

|詩| 양옥집

양옥집 내 영혼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작품. 장마철이면 부엌 아궁이에 물이 고이는 하왕십리 미음字 한옥에서 길 건너 도선동 양옥집으로 이사를 간다. 바람이 自由自在로 들락거리는 2층 내 방 밖 옥상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나발을 분다. 잠시 속세를 깔본다. 클라리넷  콘체르토 3악장 론도 알레그로. 모짜르트 작품 속에서 내 영혼이 마구자비로 활개친다. 나는 내 자신의 작품에 지나지 않는구나. 옆집 기와지붕 밑 여자가 제발 고만 불라며 날카롭게 소리치네. 詩作 노트:하왕십리 미음字 한옥에서는 앞마당 장독대에 올라가서 나발을 불다가 군화 한 짝이 집안으로 날아온 적이 있다. 맞을 뻔 했다. © 서 량 2024.04.06

|詩| 겨울 음악

하늘이 우중중한 회색 빛으로 내 머리를 짓누르는 겨울 아침에 베토벤 열정 소나타 3악장을 듣는다 국도 87번이 뉴욕 남북으로 줄기차게 뻗은 하이웨이가 나를 관통한다 겨울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내가 열 살을 갓 넘어 앞마당 장독대 새파란 하늘 반들반들 비치던 간장 항아리 그 칠흑 같은 굴절의 삐딱한 각도가 하여튼 지금도 좋아라 가녀린 민들레 꽃줄기 여고생 당신 야들야들한 허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칠까 말까 고추장 고드름 아프게 뾰족하게 맴맴 내가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뉴욕 하늘 완벽한 회색 빛 이게 내 유년기 하왕십리 지나 행당동 겨울이라면 눈비 질금질금 쏟아지다가 돌 축대 쿵 무너져 내리던 행당동 언덕길이라면 여기가 ©서 량 2003.02.03 - 2008.11.09

200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