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6

|詩| 피아노 치는 여자*에게

피아노는 늘 육체를 다스리는 풍습에 젖는다 열 손가락으로 광! 광! 두들기는 말초신경의 뻔뻔함으로 육체를 거부하는 생리를 잘 알고 있는 피아노 치는 여자는 검정 속옷과 스타킹 어지러운 손가락 놀림 발밑에 눌리는 소프트 페달만으로 피아노는 충분히 남자의 함정이다 피아노 치는 여자 목 아래로 푹 파여 있는 아늑한 함정이다 육체는 육체끼리 영혼은 영혼끼리 따로 떨어진 연습실에서 음계연습을 한다 머리를 잘 빗지 않는 남자를 자신에게 단단하게 묶어 두기 위하여 오늘도 밤늦도록 피아노 치는 여자여 이룰 수 없는 사랑, 저 싱싱한 페미니즘이 붉은 피를 흘릴 때 슬며시 고개를 드는 휴머니즘을 위하여 나를 때려 다오, 피아노 치는 여자여 여지 없이 나를 발로 짓눌러 다오 새까만 그랜드 피아노 소프트 페달처럼 * 피아노 ..

발표된 詩 2022.04.11

|컬럼| 161. 어린이 놀이터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친구에게서 어느 날 느닷없이 전화가 온 김에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치자. 요사이 뭘 하며 지내냐, 하고 물어 봤을 때 "응, 나 그냥 놀고 있지."라고 그가 대답했다면 그건 아무래도 백수건달로 빈둥대며 지낸다는 말이다. 이럴 때 우리가 무심코 쓰는 '놀다'라는 말은 좀 부정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당신은 '놀다'에는 '쉬다'라는 좋은 의미가 숨어있다고 겸손한 표정으로 말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놀다'라는 단어는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인상을 풍기면서도 휴식한다는 뜻 또한 있는 것이 참으로 수상한 노릇이다. '노릇'이라는 말도 '놀이'나 '노름'처럼 '놀다'에서 생겨난 순수한 우리 말이다. 하다 못해 '노래'도 옛날 말 '놀애'처럼 '놀'자가 들어가고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