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섬세하고 유장한 말씀 / 김종란

섬세하고 유장한 말씀 김종란 아버지 낮은 목소리 들리네 가까웁게 웃음소리 밝은 그곳 아니고 이렇게 홀로 남아 있는 어둑한 곳에 더 가까웁게 따스한 어투로 부르며 아주 여린 마음에게 하듯 바라만 보는 총총한 눈빛을 향하니 이 세상의 초침은 잠시 잦아들지 긴 눈빛으로 쫓으시던 젊음은 이제 지나서 내 아버지 마음 문 뒤늦게 밀어보면 장도를 걷는 무사처럼 섬세하고 유장한 말씀 닫아 걸고 불면의 밤을 이기시던 이야기꾼의 가슴에 기대면 큰 바람소리 피에 섞인 것이 아닌 영혼에 깃들어 있을 소식을 애써 들어 보시려는 녹슨 갈비뼈를 벌려 바짝 마른 심장이 깃들도록 눈 바람 가두는 오두막 묵언(默言)의 오두막에서 깃을 털며 눈물에 젖은 깃을 털면서 새로운 말(言)은 깃을 펴보다 그림자를 펄럭이며 세계의 초침 위로 날아간..

|詩| 뜨거운 생선

나이 먹으면 먹을 수록 인격이 원만해지기는커녕 좋고 싫음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 틈만 생기면 저를 놀리려 하시네요. 우리는 늘 과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 수록 새삼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이 있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짓 몇 개를 빼 놓고는 다른 일일랑 입 싹 씻고 눈도 주지 말아야지, 하며 마음을 다져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접시 위에 얌전하게 놓인 생선이 저는 평생 단 한 번도 피를 흘려본 적이 없다고 속삭인다. 과거를 피하지 마세요. 과거는 마음의 고향이랍니다. 비단결 망사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날렵하게 기어오르던 물결, 그 광범위한 물살에 씻기고 씻겨 삐죽삐죽 돋아난 가시가 당신의 혀를 찌르는 저녁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부드러운 생선살에 레몬즙을 뿌린다. © 서 량 20..

발표된 詩 2021.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