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 5

|컬럼| 442. 낯가리기

에즈라는 기분장애와 성격장애가 심해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데다가 법적인 문제조차 겹친 결과로 내 병동에 오래 머문다. 그는 증세가 완화되어 퇴원을 바라본다. 뉴욕 북부 소도시의 ‘Community Residence, 지역사회 거주지’에서 받아주겠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허용하는 기숙사 같은 곳. 그는 그곳의 삶이 엄격한 규율로 운영되는 폐쇄병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에즈라가 마음을 바꾼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퇴원을 하지 않겠다고 우긴다. 병동생활이 너무 힘이 든다며 시시때때 뗑깡을 부리면서 얼마나 자주 직원들을 괴롭혀 왔는데. 직원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앓던 이빨 빠지듯이 일상의 행복지수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진다. 퇴원을 거부하는 이유인 즉, 생각..

|詩| 편안한 마음

키가 큰 떡갈나무가 내 그림자를 보듬어 주는 한나절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바람 부는 봄날 어느 날 떡갈나무 몸체를 애써 붙잡아주는 내 거동이 이상하다 느슨해진다 키가 큰 떡갈나무가 번쩍이는 해와 달 반대쪽 그 자리에 마냥 우두커니 서서 그냥 그대로 지복(至福)을 누릴 것이야 봄이며 겨울이며 별로 가리지 않고 정신병동 폐쇄병동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은 후 내가 창밖을 내다볼 때 같은 때 © 서 량 2017.05.05 - 2021.01.19

2021.01.19

|컬럼| 358. 마스크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걸어간다. 젊은 여자, 은퇴한 대학교수, 급하게 라면을 먹고 편의점을 나온 대학생, 정치적 이념이 강한 중년 남자, 또는 겁 없는 무신론자들이 제각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어간다. 마스크는 2020년 3월 현재 중국 우한이 발원지로 알려진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아내는 방패막이다. 마스크는 투구를 쓴 고대의 병사들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적군의 화살을 막으려고 방패로 몸을 가리는 자기방어 메커니즘이다. 마스크는 절대절명의 구명책이다. 마스크는 은성한 가장무도회에 참가하는 소박한 가면이다. 마스크는 자신이 포식동물의 먹거리가 아니라는 시그널을 할로윈데이 가면의 무서운 이미지로 전달한다. 마스크는 포식성이 강한 상대방을 혼동에 빠뜨려서 내 안전을 꾀하려는 방어..

|컬럼| 333. 왜 난동이 일어날까

내가 일하는 정신병원은 병원 전체가 폐쇄병동이다.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여러 군데 전전하다가 후송돼 오는 곳이기 때문에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어렵고 오래 걸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확성기를 통하여 ‘코드 그린’이 전 병원에 울려 퍼진다. 직원들이 비상사태가 터진 병동으로 뛰어간다. 한 환자가 난동을 피운 결과가 코드 그린의 원인이 된다. 그린, 초록은 성장의 상징이니까 환자들이 정신적 성장을 위하여 난동을 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나는 자주한다. 어릴 적 길거리에서 내 또래 코흘리개 어린애들이 치고 박는 싸움이 나면 동네 어른들이 “싸워야 키 큰다”며 소리치며 애들 몸싸움을 선동하던 기억이 난다. ‘agitation, 난동’에 대하여 환자들과 토론했다. 난동을 피우는 환자는 병동직원이나 다른 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