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 3

수박 / 김정기

수박 김정기 평온의 숲에 칼끝을 대니 붉은 도시에 흐르는 냇물은 맑고 깨끗하다. 내 책꽂이에 꽂힌 난해한 시같이 길을 못 찾아 내가 내는 도시계획대로 사각형을 만들고 그날 친정집에서 먹던 달콤함이 이 마을에 넘친다. 당신의 임지에서 듣던 나팔소리에 섞여 총성이 수박 안에 가득해 터져 나올 때 사방에서 갈증이 물소리를 낸다. 수박은 이미 지난 시간을 향해 구르고 굴러 닿을 수 없는 도시의 길목을 지키고 수박 씨 같은 글씨로 소설을 쓰던 큰오빠가 무겁던 젊음을 지고 걸어오고 있다. 내가 수박을 자르고 있는 이 밤에 세월은 물구나무를 서서 엉키고 있다. © 김정기 2012.06.28

|詩| 꿈꾸는 의자

균형, 순수와 평온으로 이루어지고, 육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쉬게 하는 좋은 의자처럼, 마음을 달래고 진정시키는 그런 예술을 나는 꿈꾼다. --- 앙리 마티스(1869~1954) 등뼈가 앞으로 구부러진 자세 손바닥을 감싸는 옅은 바람 당신의 꿈은 꿈틀대는 애니메이션 크레파스 크레용의 부드러움 보름달 반쯤 가려진 한밤 짙푸른 넓은 잎사귀 숨소리 고요한 숲이다 앉은 자세로 자고 있어요 팔꿈치에 고개를 푹 파묻은 채 당신의 균형이 망가진다 *이무깃돌 입안에서 잠자는 미녀와의 대화가 빗물로 흘러내리는 *성문의 난간에 끼워서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용이나 이무기 머리 모양의 돌로 된 홈 © 서 량 2022.08.28

2022.08.29

|컬럼| 391. 고흐를 동정하다

-- There is peace even in the storm. (Van Gogh) – 평온은 심지어 폭풍 속에도 있다 (고흐) 한 미약한 인간은 인정사정없는 폭풍의 괴력을 맞닥뜨리지 못한다. 열악한 현실에서 한 가닥의 평온을 구가하는 향취가 전해지는 고흐(1853~1890)의 짧은 명언을 곱씹는다. 폭풍이 거창하고 사나운 객관이라면 평온은 한 개인의 희망사항과 의지가 깃들어진 주관이다. 객관과 주관을 이렇게 갈라놓는 내 의도는 환경이라는 외부상황과 평온이라는 내부상태와의 상호관계를 조명하는데 있다. 고흐는 37살의 아까운 나이에 권총 자살로 힘겨운 생을 마감했다. 그의 정신질환에 대하여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의견을 피력한다. 정신분열증, 조울증, 간질, 알코올 중독, 성격장애 같은 굵직굵직한 병명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