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4

|詩| 맨해튼 2020년 4월

맨해튼 2020년 4월 당신은 기록을 남기고 싶어 안달이다. 낙동강 언저리에 흩어지는 허쉬 초콜릿 냄새. 철모에 담겨 보글거리는 라면에 얹혀 금방 익는 달걀 노른자. 군대 냄새 방부제 냄새를 기억한다. 당신은 맨해튼 브로드웨이 언저리 길거리에 간신히 간신히 주차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 무서워하며 마스크를 쓴 청년이 자전거를 유턴하는 맨해튼  길거리 기록을 남기려고. 詩作 노트:간신히 간신히 코로나 바이러스 시절을 보냈다. 무서움이 삶의 원동력이 되던 시절. 군대시절과 비슷하다.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더니. © 서 량 2024.04.08

|컬럼| 380. 언힌지드

러셀 크로가 주연한 2020년 영화 ‘Unhinged’가 한국에서 번역 없이 그냥 ‘언힌지드’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것을 알았다. 영한사전은 ‘경첩을 뗀, 불안정한, 혼란한’이라 풀이한다. ‘unhinged’는 슬랭으로 미쳤다는 뜻으로 매우 모욕적인 말이다. 경첩이 떨어져 나간 문을 상상해 보라. 제대로 닫히지 않아서 제 구실을 못하는 문의 황량함을 생각해 보라. 신호등 앞에서 꿈지럭대는 앞차에게 빵~ 하고 경적을 울린 여주인공이 심한 보복을 당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무서운 속도로 쫓아온 앞차 운전수 러셀 크로는 사과를 요구한다. 그녀는 차갑게 거절한다. 분노에 찬 그가 줄기차게 그녀의 가족과 연고자를 해코지하고 죽인다. ‘unhinged’를 ‘뚜껑이 열리다’, 또는 ‘꼭지가 돌다’라고 본 뜻에 가깝게 ..

|컬럼| 378. 대형사고

- There’s a divinity that shapes our ends, Rough-hew how we will. (Shakespeare) 우리의 끝을 다듬어 주는 신성(神性)이 있다네, 우리가 아무리 대충 마무리하려 해도. (셰익스피어) - ‘대형사고’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2020년 12월 중순 한국 정계 소식을 듣는다. 코로나 판데믹이 세계를 뒤흔드는 통에 지구인들은 초긴장 상태다. 숱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는 가운데 대형사고라는 말은 또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죽거나 상해를 입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대형 교통사고? 원전 사고? 화산 폭발? 아니다. 내가 듣는 대형사고라는 말은 물리적 사고가 아니다. 사회심리적 집단사고다. 네이버 사전은 대형사고를 “사람이 죽거나 심하게 다치거나 하는, 규모..

|컬럼| 359. Social Distancing

인적이 끊어진 이탈리아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할 뿐, 배경음악이 없는 화면진행이 한동안 지속된다. 한 사람이 방에서 입을 꾹 다물고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이어진다. 2020년 3월 어느 주말,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대신 나는 티브이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전 세계에 창궐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독 이탈리아만을 집중적으로 강타하고 있다. 지구상 모든 국가중 이탈리아의 사망율이 최고치로 9.5 퍼센트. 바이러스에 감염된 그들 열 명중 거의 한 명이 죽는다는 통계가 섬뜩한 현실로 우리를 엄습한다. 중국은 일찌감치 질병이 발생한 원조이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이 버럭버럭 소리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바이러스의 숙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는 눈에 뵈지 않는 바이러스를 경계하고 회피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