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시스 2

|컬럼| 415. 아리스토텔레스와 투란도트

대학시절 한 여대생과 사랑에 빠졌었다. 어느 날 그녀가 “우리 이젠 그냥 친구로 지내요,” 한다. ‘플라토닉 러브’ 관계 비슷하게 지내고 싶다는 것. 양파에 식초를 뿌려가며 자장면을 먹으면서 마주 앉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호되게 설레이던 나에게 플라토닉 러브는 아주 이상한 외래어였다. 문학청년 티를 내며 시(詩)에 대하여 호들갑을 떨지 말았을 걸 그랬지. 플라톤의 저서 (BC 380)에 나오는 ‘시인(詩人) 추방론’을 읽었다. 그는 진리의 원형질, ‘이데아’와 그것을 모방하는 현상계와 현상계를 재차 모방하는 예술가들, 특히 시인들이 공화국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했다. 족쇄를 찬 노예들이 관람하는 동굴벽 그림자 놀이의 프로듀서들이 예술가라는 사연이다. 동굴 밖에 건재하는 ‘이데아, Idea, 이념(理念)’..

|컬럼| 352. 내 상황 속에 내가 없다

환자가 내게 대충 이렇게 말한다. “형이 정신병이 있었고, 누나는 유명한 재즈 가수였고,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평생을 쇼핑몰에서 일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다가 마침내 나는 응수한다. “모든 집안 식구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하면서도 본인 자신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게 흥미롭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거칠게 반응한다. 환자가 부모와 형제자매에 대한 원망심을 털어 놓고 싶어하는 마당에 내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는 세션이면 세션마다 쉬임 없이 똑같은 카타르시스 시나리오에 매달리고 나 또한 끈임없이 똑같은 사연을 귀담아듣는다. 정신상담이 증오심의 배설에서 그치는 경우에 더 이상 아무런 진전이 없는 제자리 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은 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