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그랑 2

|詩| 목련이 쿵 하면서

목련이 땅에 떨어질 때 무슨 소리가 날 것이라는 생각이다 쿵 하는 타박상 이상의 충격이거나 들릴락 말락 하는 손목시계의 실고추 같은 빨간 초침이 재깍재깍 돌아가는 소리랄지 혹은 근사한 포도주 잔이 쨍그랑 깨지는 경악인지도 몰라 그것은 나무가 점점 더 노골적으로 신음하면서 의식이 돌아오는 4월 찬바람 속 스산한 기쁨일 수도 있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나 목련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고개를 심하게 갸우뚱하지 않고도 제대로 잡아내는 경지에 들어갈 것인지 지금으로서도 자못 궁금한 심정이다 © 서 량 2002.04.16 -- 두 번째 시집 수록 (2003) 시작 노트: 20년 전에 쓴 시에 대하여 동정심을 품는다. 시를 일말의 소회, 수상, 스쳐가는 느낌의 직설적 표현 같은 것으로 치부하던 시절이었다. 그 상투적인 ..

발표된 詩 2024.04.16

젖은 꽃 / 김정기

젖은 꽃 김정기 세끼를 커피 숍에서 때우는 린다는 우리 집 단골손님이었다. 탐욕스럽게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 냉수를 마시며 정부보조금을 아껴서 연명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도넛 하나를 주면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다가도 돌아서면 게눈 감치듯 먹어치웠다 끝없는 식욕을 잡을 수 없으면서도 고요는 땅으로 가라앉아 켜를 이루고 린다의 평지엔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았다. 와인 빛깔 새 코트를 입고 온 날 아침 우리는 합창하듯 칭찬했더니 단 한 번 조금 웃어보였다. 포도주잔들이 쨍그랑 부서지며 그녀의 허기는 메워지고 있었다 혼자 있게 해 달라는 완강한 토라짐 대신 한 번쯤 무료로 주는 빵을 씹으며 쪼글쪼글한 입매에서 고맙다는 말도 새어나오고 그 얼굴은 젖은 꽃이었다. © 김정기 2010.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