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 7

|詩| 춤추는 봄

춤추는 봄 떡갈나무가 뿌리를 치켜들고 물구나무서기를 했거든요 몸매 날렵한 종달새 한 마리 구름 너머로 날아갔거든요 바람 찬 해변 반짝이는 조약돌이 지난 가을 뒷마당에 매장된 낙엽이 후끈 달아올랐대 아이, 싫어, 싫어! 볼썽사납게 당신이 추는 개다리춤 詩作 노트: 개다리춤: 양다리를 마름모로 벌렸다가 오므리는 행동을 빠르게 반복 하면서 추는 춤 - 뜻이 궁금해서 굳이 사전에서 찾아 봤지. 기하학적인 설명이네. 눈에 선해. 봄춤은 알레그로 템포. 봄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 서 량 2008.04.18 – 2024.02.08

2024.02.08

티테이블에는 어제의 햇빛이 아직 남아있다 / 김종란

티테이블에는 어제의 햇빛이 아직 남아있다 김종란 티테이블에는 어제의 햇빛이 아직 남아있다 아무도 오지 않아도 약간 빼어 놓은 의자엔 온기가 서려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어서 모서리들이 둥글게 부드러워 보인다 분명 꽃은 없는데 꽃들이 꽃병 안에서 미소 짓는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어제의 그제의 그그제의 햇살이 쌓인다 누가 그곳에 가지 않아도 티테이블은 만나고 있다 사람 산토끼 거북이 종달새 모습들이 불현듯 테이블 언저리를 잡고 웃고있다 티테이블은 몽상의 바다에 자리 잡고있다 내가 온곳에서 몰래 따라온 푸름이 깊어질 수록 더 반듯하게 몸을 펴고 앉아있다 눈을 감으면 티스푼이 찻잔에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시간의 껍질이 벗겨지는 작은 마주침들 족쇄가 차인 발목은 점점 깊은 바다에 가라앉고 열 발걸음쯤 떨어진 ..

|詩| 자목련과 종달새

자주색으로 터지는 꽃잎 열림이 하늘을 부유하는 깃털 떨림이 몸서리치게 유한하다 당신의 결을 매만지는 나의 앎 그 절실한 앎도 유한해 자목련이 종달새와 덩달아 지지배배 하늘을 날아다니네 그들은 몰라요 꿈에도 알지 못해 오늘같이 하늘이 소리 없이 젖혀지는 동안 당신이 좀처럼 서글퍼 하지 않는다는 걸 시작노트: 집 차고 옆 굴뚝 앞에 핀 자목련 꽃을 사진 찍었다. 몇몇은 꽃잎을 활짝 뒤로 젖힌 자세다. 자목련과 종달새의 삶이 유한하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친다. 엊그제 한 블로거의 詩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종달새는 울지 않는다. 종달새는 다만 노래할 뿐. 자목련이 종달새와 함께 새처럼 훨훨 날아간다. ©서 량 2021.04.15

2022.04.15

|詩| 봄詩

종려나무가 뿌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물구나무서기를 했거든요, 아까요 몸매 날렵한 종달새 몇 마리가 저쪽으로 황급하게 날아갔어요 반짝이는 강변 조약돌도 겨우 내내 땅바닥에 누워있던 눅눅한 낙엽들도 죄들 다 들뜬대 그럼 안돼, 하며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쳐도 안 통해요 볼썽사나워, 볼썽사나워라 나도 내친김에 나 몰라라, 하면서 서늘한 봄 품에 냉큼 안길까 하는데 © 서 량 2008.04.18 – 2020.02.14 - 2021.03.31

2021.04.01

|컬럼| 73.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우리 전래동화에서 사람과 호랑이가 대적하는 장면을 유심히 살펴 본 적이 있는가. '팥죽할머니'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같은, 구질구질하면서도 정감이 듬뿍 가는 사연들을. 팥죽할머니는 닭이며 송아지를 잡아먹는 호랑이를 팥죽을 주겠다며 어느 날 저녁 집으로 초대한다. 할머니는 호랑이에게 불 꺼진 화로를 후후 불라 해서 눈에 재가 들어가게, 고춧가루를 탄 물로 눈을 씻게, 그리고 바늘을 촘촘히 박아 놓은 행주로 따가운 눈물을 닦게 한다. 호랑이는 마당으로 뛰어나가다 개똥에 미끄러지고, 멍석 도깨비에 둘둘 말리고, 지게 도깨비에 얹혀 운반되어 강물에 첨벙 던져진다. 당신은 또 떡바구니를 들고 산언덕을 넘을 때마다 번번히 호랑이를 만나는 떡할머니를 기억하는가.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

|詩| 봄의 광끼*

우리들끼리 말이지만 새 봄에는 뭐든지 가능하대요 아까 종려나무가 뿌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걸 봤어요 싱싱한 물구나무서기 종달새 쯤은 저리 가라는 거에요 걔네들이 아무리 비상력이 좋다지만 봄에는 또 돌멩이건 지난 가을에 미처 치우지 못한 낙엽들이고 다 덜렁덜렁 들뜨는 법이래 이놈들이 덜렁덜렁 들뜬다 해서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도 아니야! 하며 내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쳐도 시종일관 막무가내라 시방 저도 봄의 광끼에 몸을 맡겨볼까 하는데, 어때요? © 서 량 2008.04.18

2008.04.19

|詩| 봄이 울고 있다

봄이 혼자 우는 소리를 듣고 있어 봄은 공연히 무서워서 울기도 하지만 제풀에 혼자 좋아서 우는 수도 많대 겨울 내내 쌓이고 쌓인 꽁꽁 얼어붙은 고드름들이 고놈의 뾰족뾰족한 고드름들이 질질 녹을 즈음 봄에는 개구락지건 종달새건 미나리건 민들레건 줄곧 울어댄대 나도 당신도 같이 울어 볼까 핏덩어리 볼기짝을 탁! 때리면 갓난아기가 소스라치게 울듯 그렇게 으앙! 하면서 우리는 울어도 좋아 진짜야 우리가 봄이 아니면 인제 언제 울겠어 한 여름에 우는 건 말도 안돼 날씨가 텁텁해지면 우리 감성이 드라이해진대 사랑은 봄이나 가을에 태어나야 해 그것도 봄에 함초롬히 솟아나는 새파란 새순이라야 제격이래 © 서 량 2008.03.04

2008.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