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3

|詩| 항아리 원피스

항아리 원피스 -- 마티스 그림 “프랑스 유화”의 여자에게 (1939) French 스타일로 새빨간 항아리 노란 하늘로 붕 뜨는 여자의 몸 미음字로 생긴 정방형 正方形 장독대 스르르 사라지는 장독대 햇고추장 냄새 향긋한 항아리 원숙한 원피스 詩作 노트: 마티스 여자의 옷이 몸에 꼭 끼어 보인다. 날씬한 옷이 항아리 치마로 느껴진다니까. © 서 량 2023.08.29

|詩| 화려한 가을

바람결 물결치는 호숫가 머리칼 풀어헤친 갈대들이 서걱거린다 샛노란 금발 또는 갈색 머리 내 어릴 적 앞마당 장독대보다 더 높은 음정 하왕십리 지나 행당동 무학여자고등학교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 다음 소절을 예고하는 트롬본 주법으로 낮게 터지는 당신의 탄성 지구의 예민한 음감, 바람이 몸을 푼다 천천히 잠시라도 좋아, 잠시라도 좋다며 우주 속 깊이 자리잡은 무한한 가을을 나는 줄기차게 탐미한다 시작 노트: 가을에는 바다를 멀리한다. 갈대밭을 훑어가는 바람. 잔물결 일렁이는 호수. 행당동 변전소 앞을 지나 전차 역으로 가는 행길에서 무학여자고등학교 아이들 떠드는 소리 들린다. 금관 4중주 연주가 그치지 않는다. © 서 량 2022.10.11

2022.10.11

|詩| 간장에 비친 얼굴

날 맑은 가을날 장독대에 올라가 간장항아리에 얼굴을 집어넣으면 새까만 간장거울 속에 눈 흰자위가 분명치 않은 커다란 얼굴 열 살 짜리 얼굴 내 얼굴이 아닌 얼굴이 보인다 얼른 머리를 빼고 다시 보면 매운 고추와 숯 덩어리 몇 개 무작정 둥둥 떠 있는 간장항아리 속 간장거울 뒤쪽으로 은박지 하늘이 흔들린다 내 얼굴도 세모 네모 마름모꼴 사다리꼴로 일그러진다 크레용으로 북북 그린 그림 유년기 도화지 속 도깨비 얼굴 골이 잔뜩 난 도깨비 이마에 뿔이 크게 두 개 솟아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날 간장항아리 안에서 끈질기게 파도가 친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파도의 얼굴을 올려다 본다 끝이 안쪽으로 하얗게 말리는 어떤 파도는 나보다 훨씬 키가 크다 © 서 량 2004.10.23 2005년 4월호에 게재 ..

발표된 詩 2022.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