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4

|컬럼| 372. 당신의 이름을 나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와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 시절 음질이 좋지 않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한 가요가 떠오른다. 가수 이름과 노래 제목은 생각나지 않고 가사와 멜로디만 생생하다. 아무리 뒤져봐도 인터넷에 뜨지 않는 그 노래 가사가 이렇다. 당신의 이름을 나는 알고 싶소/ 그리고 내 이름도 아르켜 드리리다/ 우리가 서로서로 이름을 앎으로써/ 오늘의 사랑을 맺을 수 있고/ 그리고 내일도/ 기약할 수 있지 않소 여가수는 남녀가 하는 사랑의 전제조건으로 통성명을 내세운다. 그 절차에 착수하는 세레나데를 부른다. 남자가 작업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여자 쪽에서 “What’s your name?” 하고 물어보는 정황! 에덴의 동산에서 금단의 열매에 대뜸 손을 댔던 이브처럼 그녀..

|컬럼| 303. 감정의 역동성

주말 아침에 한 정신과의사가 티비 뉴스 프로에서 우울증에 대하여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는 새로 개발된 약을 추천하면서 그 약이 우울증 외에도 불안증세가 있으면 그것 마저 곁들여서 잘 처리해준다고 언급한다. 그 순간 셰익스피어가 햄릿 입을 통해서 한 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을 이상스럽게 연상하면서 움찔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는 그 유명한 구절을 나는 그때 굳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고 직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있다, 없다' 하는 흑백논리를 추구하는 그 유능해 뵈는 백인의사에게 거부반응이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 마음이란 이를테면 한 여자가 임신이다, 아니다 할 때처럼 우울증..

|컬럼| 246. 럼펠스틸트스킨

그림 형제(Grimm brothers)의 동화책에 나오는 'Rumpelstiltskin'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옛날에 허풍쟁이 방앗간 주인이 자기 딸은 물레질로 지푸라기에서 금을 뽑아내는 재주가 있다며 떠들고 다녔다. 왕은 그녀를 불러 지푸라기를 주면서 밤새 금을 짜놓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노라 명한다. 골방에서 울고 있는 방앗간 딸 앞에 난쟁이 도깨비가 나타나서 적절한 보상을 받으면 그 일을 해주겠다고 이른다. 그녀가 그에게 목걸이를 건네준 다음날 아침 방안에 번쩍이는 황금이 몇 점 놓인다. 왕이 더 많은 지푸라기를 가져오자 도깨비는 그녀가 끼고 있던 반지를 받고 다시 금을 만들었다. 세 째 날, 왕은 방에 지푸라기를 잔뜩 채워 놓고 이번에도 같은 일에 성공하면 그녀를 왕비로 삼겠다 했다. 그녀는 ..

|컬럼| 123. 이름에 대하여

자고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거늘 그 풍조를 좇아 우리는 명문대학을 추구하고 명품을 밝히는 관습이 있다. 하다 못해 얼마 전에 무심코 본 티브이 광고에서도 '김치도 명품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춘수는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의미심장하게 술회한다. 이 발언은 꽃도 관등성명이 분명해야 꽃답다는 엄청난 성명서처럼 들린다. 반면에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1597) 2막 2장에서 줄리엣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설파한다.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