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론 3

|컬럼| 430. 멘붕(Men崩)

병동환자 브루스가 틈만 생기면 주장한다. “I am not mental.” - 표준영어로 “I am not mentally ill.” 할 것을 줄여서 하는 말. 자기는 정신병이 없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병동에 체류할 이유가 없으니까 어서 퇴원을 시켜달라는 압력이다. 병원 말고 딱히 살 곳이 없을 뿐더러 설사 있다 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강짜를 부리는 환자를 받아주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없다. 그도 나도 ‘멘붕’이 일어날 정도다.멘붕은 브루스가 떠들어대는 ‘mental’의 ‘men’과 붕괴(崩壞)의 첫 자의 합성어로서 2000년대부터 한국에서 유행한 말이다. 2012년에 그해 최고의 유행어로 뽑혔다. 정신이 무너지고 깨진다는 뜻. 실성했다, 정신줄이 나갔다, 심하게는 미쳤다는 표현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

|컬럼| 468. 네고

네고’는 참 이상한 말이다. ‘negotiation’의 처음 두 음절만 남기고 나머지는 싹 삭제된 콩글리시다. 미국인들이 ‘deal’이라는 일상어를 쓰는데 반하여 우리는 굳이 라틴어에서 유래한 유식한 단어를 쓴다.  ‘니고시에이션’이라 발음하는 이 어려운 말을 사전은 ‘협상, 교섭, 절충, 협의’ 따위의 한자어로 육중하게 풀이한다. 물건 값을 깎으려고 흥정하는 장면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다. 클린네고, 케이블네고, 先네고, 네고王 같은 잡탕 어휘가 언어학자들을 골치 아프게 한다.   남들과 마음을 절충하는 과정을 그룹테러피의 주제로 삼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deal’, 딜, 거래(去來)를 해야 된다는 야무진 의견이 나온다. 나는 그 말에 집중한다. 거래는 갈 去,..

|컬럼| 459. 심리치료

… 상징의 의미를 아무리 건드려 보아도/ 상징은 다시 살아나지 않음을/ 뒤늦게 전해드립니다/ 상징은 상징끼리만/ 오래 내통해 왔음을/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2001년 본인 詩, 「사고현장」 나는 약물치료에 치중하는 정신과의사를 ‘druggist, 약사’라 부른다. ‘druggist’라는 앵글로색슨어는 ‘pharmacist’라는 라틴어보다 소탈하게 들리지만, 길거리 마약도 ‘drug’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감이 좋지 않다. 되도록이면 심리치료에 의존하는 정신과의사를 ‘psychotherapist’라 한다. 약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체인 반면, 심리는 추상적인 컨셉이다. 약을 신봉하는 의사를 ‘유물론자, materialist’, 심리치료를 추구하는 의사를 ‘유심론자, mentalist’라 부르면서 유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