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 3

|詩| 인터넷에 잡히는 꽃

솜구름 떠도는 화면 속 거무칙칙한 바위 틈에 자리잡은 *벌레잡이제비꽃, 초록색 바람에 붙잡힌 벌레잡이제비꽃이 다섯 손가락을 펼친다 진한 보랏빛 요술을 부리는 벌레잡이제비꽃, 전자파장 자욱한 인터넷에 새빨간 점박이 무당벌레 한 마리 기어간다 잠시 후 눈물을 펑펑 쏟는 벌레잡이제비꽃, 초록색 바람결에 짙은 안개가 깔리는 전자공간에 투사되는 당신의 심층심리 *Pinguicula vulgaris: 대한민국 북부 높은 산의 습한 바위나 늪지에 나는 여러해살이 식충 식물 시작 노트: 내 삶을 지배하는 인터넷. 어떤 때는 종일토록 인터넷을 쏘다닌다. 우연찮게 벌레잡이제비꽃을 공부한다.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이라니! 말만 듣던 그런. © 서 량 2009.04.14 – 2022.12.15

2022.12.15

|詩| 봄이 나를 버리고

매년 봄이면 손짓하고 꼬리치고 싱그러운 들판을 함부로 뛰어다니며 봄을 유혹하다가 덜컥 변덕이 나서 내가 먼저 달콤한 작별을 고하기도 하는 줄로 예사로이 알았는데 // 매년 봄이면 나무들이 벌건 대낮에도 몸에 꼭 끼는 초록색 야회복을 입고 루비며 진주 목걸이를 달랑달랑 걸친 그 모습에 고만 질려서 내 뻥 뚫린 시야를 앞지르는 게 정말 미워서 눅진눅진한 앞마당 밖으로 내가 먼저 봄을 쫓아내는 줄로 참 예사로이 알았는데 // 이제 나 봄 정원 귀퉁이에 하나의 돌멩이가 되어 좀 긴장하며 눈 감은 채 가만가만 누워있고 봄이 지 마음대로 이상한 요술을 부리다가 불시에 나를 버리고 훌쩍 떠나겠다는 데야, 이제 나는 © 서 량 2006.05.25 [뉴욕 중앙일보 글마당] – 2020.02.16 개작

발표된 詩 2020.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