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5

|컬럼| 481. 오해

뒷마당 풀밭에 사슴 한 마리 서 있다. 그에게 살금살금 접근해서 정면으로 시선을 교환한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사슴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생후 몇 달 안되는 손녀딸을 팔에 안는다. 그녀는 아주 차분한 시선으로 내 얼굴을 살핀다. 이 아이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토끼와 호랑이가 동화에서 말을 주고 받는다. 동화작가는 의인화(擬人化) 기법으로 동물을 사람으로 둔갑시킨다. 말은 생각을 전제로 하는 법. 당신의 손짓발짓, 웃거나 찌푸리는 얼굴, 짧은 탄성 같은 것들은 비언어(非言語)적인 도우미 역할을 할 뿐 세련된 ‘마스터 오브 세리머니’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아이가 어른처럼 언어를 사용해서 생각한다는 설정을 성인화(成人化)라 한다. 나는 사슴도 손녀딸도 언어를 훌륭하게 ..

|詩| 오해

오해 밤과 낮이 서로 자리를 바꾸며 태양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나는 귀머거리야. 베어마운틴 들쑥날쑥한 산허리 외길을 급하게 운전한다. 나 또한 당신 무의식 속 깊이 파인 기쁨 밑바닥에 흐르는 슬픔을 도무지 실감하지 못한다. 같은 피가 많이 섞인 손주딸 마음도 마찬가지지.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싸락눈이 슬금슬금 내린 다음 날 아침 내 헛헛한 목덜미를 데워주던 겨울 햇살은 또 무슨 의미였는지. 詩作  노트:17년 전 쓴 詩를 약간 뜯어 고친다. 맞다. 詩는 고쳐 쓸 수 있다.내가 나를 고쳐 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서 량 2007.08.20 – 2024.11.23

|詩| 달 잡기*

달은 도무지 끝이 없는 추억의 늪에서 해상도도 촘촘한 컴퓨터 메모리로 내가 생각이 없을 때만 골라서 나를 찾아왔다 그건 그야말로 급습이었어 오해하지 말아라 내가 슬펐다는 게 아니라는 걸 달을 뜯어본다는 건 참 쑥스럽고 이상해 눈만 감으면 고만인 걸 달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양 손으로 꽉 붙잡았다 달은 아무 저항 없이 몸부림도 치지 않았다 달과 나 사이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어 오해하지 말아라 비속에서 누군가가 좀 심하게 울었다는 걸 © 서 량 2012.10.03

2012.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