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4

|詩| 아버지의 방패연

아버지의 방패연 아버지가 지금 내 아들보다 더 새파랗게 어린 나이였을 때 나는 철부지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버지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내 자식이 얽히고설킨 씨앗이 이어지는 별하늘로 이윽고 불어오는 겨울 바람 아버지가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서 내 앞에서 방패연을 만드신다, 창호지에 창호지에 달라붙은 대나무 뾰족뾰족한 잔뼈, 잔뼈 연을 띄운다 등골 시린 지구 끄트머리에서 연신 요동질 치는 연줄, 가느다란 실 그러나 어느새 실이 끊어져, 툭 끊어져 옆집 마당 감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사뭇 바람결에 흔들리는 반투명 젖빛 창호지 내 아버지의 사각형 방패연 시작 노트: 유년기의 향수심이 트라우마를 능가하는 것 같다. 힘겨운 기억을 솎아낸 과거는 아름다운 과거로 변천한다. 지금도 겨울 하늘에 점잖게 군림하던 아버..

발표된 詩 2023.03.01

백 년 전 / 김정기

100년 전 김정기 100년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을 삭이기에 충분한 고요인가 이 건물에 가득하던 풋풋함 모두 어디로 갔을까 헤픈 웃음도 문안에서 졸아들고 여자의 허리에 매달리던 굵은 목소리 공중분해 되고 바람도 서로 껴안던 진주 목거리 풀어져 흩어져서 떨고 있다. 나뭇잎이 내려앉은 스카프에 낡은 실밥 하나 방에 성에 끼던 견뎌내기 어려운 추위 연필로 베껴 쓰던 연서는 세상의 창문을 모조리 닫아걸었지 어두움은 온몸을 덮쳐왔지만 손끝에 닿는 씨앗들 공중에서 떨어지는 빛으로 옷을 지어 입고 길 떠나던 백 년 전 어느 날 한 사람의 세월을 몰래 본다. © 김정기 201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