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5

벽돌 깨기 / 김정기

벽돌 깨기 김정기 벽돌에서 풋사과 냄새가 난다 컴퓨터 안에 열리는 벽돌은 못 말리는 식욕이다 창을 때리는 새벽 빗소리다 숨겨놓은 사랑이다 은빛 포장지다 눈 내리는 고향마을이다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떨리는 詩다 사람보다는 나무가 꿰지 않은 구슬더미가 시인보다는 시가 좋아지는 겨울에 벽돌은 공을 맞고도 부서지지 않는다 안으로 안으로는 조여 안아 금강석이 된다 사각형 가슴에 묻어 놓은 벽돌에 빨려 들어간다 남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 © 김정기 2011.01.08

젖은 꽃 / 김정기

젖은 꽃 김정기 세끼를 커피 숍에서 때우는 린다는 우리 집 단골손님이었다. 탐욕스럽게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 냉수를 마시며 정부보조금을 아껴서 연명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도넛 하나를 주면 고개를 저으며 사양하다가도 돌아서면 게눈 감치듯 먹어치웠다 끝없는 식욕을 잡을 수 없으면서도 고요는 땅으로 가라앉아 켜를 이루고 린다의 평지엔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았다. 와인 빛깔 새 코트를 입고 온 날 아침 우리는 합창하듯 칭찬했더니 단 한 번 조금 웃어보였다. 포도주잔들이 쨍그랑 부서지며 그녀의 허기는 메워지고 있었다 혼자 있게 해 달라는 완강한 토라짐 대신 한 번쯤 무료로 주는 빵을 씹으며 쪼글쪼글한 입매에서 고맙다는 말도 새어나오고 그 얼굴은 젖은 꽃이었다. © 김정기 2010.02.04

|컬럼| 363. 멋, 맛

옛날 서울 종로에 만나당이라는 빵집이 있었다. 팥앙금이 듬뿍 들어간 만나당의 찹쌀떡 맛이 마냥 그립다. 만나당은 맛이 좋다는 뜻의 ‘맛나다’ 외에도 ‘만나다’를 연상시킨다.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반갑게, 또는 조심스럽게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긴 세월이 지난 요즘 한국은 빵집보다 ‘맛집’ 소식이 대단하다. 만나당 말고도 ‘맛나당’이라는 음식점 이름이 눈에 띈다. 사람보다 음식이 우선이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emotional eating, 정서적 섭식’ 증상이 발생하는 2020년 5월 중순이다. 불안과 공포를 정성껏 삭히는 우리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집에만 있으면서 삼시 세끼를 준비하는 알뜰살뜰한 여인들이 업로드한 음식 사진들을 본다. 좋은 조명과 두드러진 색채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