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3

봄, 비행일지 / 김종란

봄, 비행일지 김종란 비상 착륙한 오지에서 오렌지 몇 알 패랭이 꽃 몇 송이 물 한 컵 루소의 고백록 빈터에 적어 본다 울렁이고 헛헛하다 (이 어지러움을 잠 재울 한마디 말을 기다린다) 눈을 감고 옷깃을 여민다 찻잔에 소용돌이 치던 바람 낯선 바람소리에 입술을 댄다 바람의 기억으로 비행의 속도를 더듬는다 몰두하던 풍경이 조각조각 흘러내려 유리 파편에 스며든다 반짝임을 손끝으로 민다 그 작은 유리문 뒤 배회하던 먼 길 베고 누웠던 길 고양이 한 마리 화들짝 감았던 눈을 뜬다 허기지고 눈부시다 봄은 가벼이 날아가 남겨진 것은 무거워 허기지고 눈부시다 먼 길을 다시 걸어 가야 한다 (한 마디 말을 붙잡는다) © 김종란 2014.04.03

물의 고요 / 김정기

물의 고요 김정기 소용돌이 물살 나뭇잎을 탄다. 북녘 어디에선가 떠돌이로 왔다는 그는 돌고 도는 세상이 어지러워서 반대로 반 바퀴 돌아 땅을 잃었다 땅의 물은 모두 산으로 올라가 둥근 원을 그으며 말없는 걸어 내려오고 밤잠은 어디서 자는지 누구는 짚북데기 속에서 떡갈나무 밑에서 보았다고 했다 호숫가에 갈대들이 찬바람에 흩날리던 날 그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란다. 한 다발 꽃을 피워내려고 검은 두루마기 껍질을 연못가에 벗어 놓고. © 김정기 2010.08.25